'구천피'에서 '사천피'로…美선거 한번에 韓증시 멈춰선 구조적 이유

입력 2026-11-06 09:32:36 수정 2026-11-06 09: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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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압승→데이터센터 규제→반도체 투매는 방아쇠였을 뿐…쏠림·레버리지·완충재 부재가 만든 '증폭 장치'의 해부

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본점 스크린에 코스피 등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장 초반 8% 이상 하락해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연합뉴스
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본점 스크린에 코스피 등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장 초반 8% 이상 하락해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연합뉴스

6일 오전 9시 3분 34초, 한국 증시의 시계가 멈췄다.

코스피가 장 초반 8% 이상 급락하며 5,000선이 무너졌고, 개장 3분 만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20분간 매매가 중단됐고, 코스닥도 6%대 하락세를 보였다.

전날 5.28% 급락에 이은 이틀 연속 폭락이다. 코스피 지수가 5,000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 2월 2일 이후 277일 만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례적인 하루다. 그러나 맥락을 넓히면 이례적이지 않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서킷브레이커는 올해 들어 11번째, 제도 도입 이후 17번째다. 2000년 제도 도입 후 2025년까지 25년간 코스피 서킷브레이커 발동은 단 6차례였다. 올해 한 해에만 그 두 배 가까운 횟수가 몰린 것이다.

3월 4일과 9일(이란 사태), 6월 8일·23일·26일(반도체 피크아웃 우려), 7월 7일·13일·28일·29일(사상 첫 이틀 연속 발동), 10월 15일(미국 반도체주 약세), 그리고 11월 6일. 몇 년에 한 번 작동해야 할 비상장치가 한 달에 한 번꼴로 작동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장중 9,000선을 돌파했던 코스피가 4개월 만에 40% 급락하며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변동성 장세를 기록했다.

오늘의 폭락은 사건이 아니라 증상이다. 한국 증시는 어떤 외부 충격이든 두세 배로 키워 받아내는 '증폭 장치'가 돼 있었고, 이번에는 미국 선거가 그 장치를 건드렸을 뿐이다.

◆방아쇠: 워싱턴에서 메모리 반도체까지 48시간

인과의 출발점은 미국 중간선거다.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고, 국내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AI 붐의 실체는 빅테크가 데이터센터에 쏟아부은 천문학적 설비투자였다. 데이터센터는 전력과 물을 대량 소비하고 지역 전기요금을 밀어 올린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의회 권력 교체는 이 투자의 속도가 정치적으로 제어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혔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는 9% 넘게 하락했고 AMD는 17%대 급락했다. 여기에 규제보다 오래된 의심이 겹쳤다. 미국 증시의 하락은 데이터센터 규제 강화 가능성과 함께 대규모 설비투자의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규제가 방아쇠라면 "AI가 과연 돈이 되느냐"는 질문은 오랫동안 장전돼 있던 화약이었다.

그 충격은 메모리 공급망을 타고 한국으로 넘어왔다. 미국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국내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를 뒷받침해 온 핵심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67거래일 만에 18만원대, SK하이닉스는 110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증폭 장치 1: 두 종목이 곧 시장인 구조

여기까지는 설명이 된다. 설명이 안 되는 것은 낙폭의 비대칭이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3.13% 하락한 밤, 코스피는 8%가 빠졌다.

MSCI 한국증시 ETF는 13.46% 추락했고 MSCI 신흥지수 ETF는 5.79% 내렸다. 충격의 진원지인 미국보다, 같은 신흥국 묶음보다 한국이 두 배 넘게 흔들렸다.

첫 번째 증폭 장치는 쏠림이다. 코스피는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지수다. 두 종목이 두 자릿수로 빠지면 나머지 2,000여 종목이 버텨도 지수는 무너진다. 이 구조는 올해 들어 더 심해졌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는 2026년 들어 한국 시장 내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상장된 이후 쏠림이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증폭 장치 2: 하락을 자동으로 키우는 레버리지

두 번째는 레버리지 상품이 만든 기계적 매도다. 지난 5월 27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2×) ETF가 출시됐고, 출시 이후 개인투자자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면서 6월 19일까지 레버리지 ETF 누적 순매수 규모가 약 8조2천억원에 달했다.

효과는 숫자로 확인된다. 해당 ETF 출시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일평균 주가 변동률은 각각 4.4%, 5.1%에서 6월 26일 기준 6.8%, 7.8%로 확대됐다. 올해 11번의 서킷브레이커 중 9번이 이 상품 출시 이후에 나왔다.

메커니즘은 이렇다. 2배 레버리지 ETF는 기초자산이 떨어지면 배율을 맞추기 위해 장 마감 전 기초자산을 추가로 팔아야 한다. 미래에셋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하락으로 배율 맞춤을 위한 기초자산 매도가 발생해 하락이 가속되고, 장 마감 전 주가 하락 가속화와 거래량 급증이 '숏 감마'와 유사한 효과를 낸다고 지적했다. 하락이 매도를 부르고 매도가 하락을 부르는 자동 회로다.

국경 밖에서도 같은 회로가 돈다. 홍콩에 상장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도 빠르게 성장해 리밸런싱 거래가 외국인의 모멘텀 매매를 자극하며 국내 증시 장 마감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도 이 문제를 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레버리지 ETF가 주가 변동성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데 대해 "보완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고, 7월에 규제가 강화됐다. 그러나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달 개인투자자들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14종을 다시 사들이며 7월 규제 강화 이후 처음으로 순매수로 돌아섰다. 10월 1~23일 코스피가 18.83% 떨어진 바로 그 기간에 반등을 노린 자금이 다시 레버리지로 몰렸고, 그 돈이 오늘 또 한 번 강제 매도의 연료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증폭 장치 3: 받아줄 사람이 없다

세 번째는 완충재의 부재다. 외국인은 올해 내내 한국 주식을 팔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월 2일부터 11월 5일까지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215조4,370억원을 순매도했다. 전날에만 3조4,242억원을 팔았고, 전기·전자업종에서만 3조1,377억원어치를 던졌다.

파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물량을 받아낼 주체가 개인뿐이라는 점이다. 비교 대상은 대만이다. 지난달 하락장에서 외국인이 대만 시장에 던진 물량은 우리 돈으로 약 12조5,200억원으로 코스피 외국인 매도 물량의 3배가 넘었다.

그럼에도 가권지수 낙폭은 코스피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같은 반도체 중심 시장에서 외국인이 세 배를 팔았는데 절반만 빠졌다. 차이는 연기금과 기관이 매물을 흡수하는 완충층의 두께다. 한국은 그 자리에 빚을 낸 개인이 서 있다.

지난달 코스피가 7거래일 연속 하락하는 동안 빚을 내 투자한 이들의 반대매매 금액은 3,000억원에 육박했다. 반대매매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강제 매도이고, 완충재여야 할 개인이 오히려 네 번째 증폭 장치로 변하는 순간이다.

◆증시와 실물의 기묘한 괴리

이 폭락이 실물경제의 붕괴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이날 조간들은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성장률 전망이 상향되고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는 가운데 외국인 대규모 매도로 코스피가 급락하는 양극화를 동시에 전했다.

실적은 좋은데 주가는 폭락하는 상황은 시장이 실적이 아니라 '실적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의심의 표적은 한국 기업이 아니라 AI 투자 사이클 자체다.

전망은 극단으로 갈린다. 미국 재무부 분석가들은 비공개 보고서에서 AI 수익화 실패 시 닷컴버블 붕괴와 유사한 금융 충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고,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주식 비중 축소를 권고했다.

반면 JP모건은 AI 반도체 글로벌 수요가 여전히 견고하고 신규 생산 설비 확보가 2028년까지 어렵다며 최근 하락을 저가 매수 기회로 보는 낙관론을 유지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데이터센터 규제 우려가 실제 반도체 주문 감소나 기업 실적 악화로 이어지는지 확인돼야 판가름 난다.

◆"외부 요인은 못 막아도 증폭은 막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락의 원인보다 한국 증시의 구조에 주목한다.

한 증권사 임원은 "국내 증시의 급락으로 개인투자자들이 반대매매에 내몰리고, 손실을 만회하려고 해외 고위험 상품까지 찾는 상황 자체가 우리 자본시장의 취약성을 드러낸다"며 "정부가 밸류업을 강조하면서도 외국인 매도 충격을 완화하고 시장 신뢰를 회복할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