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기동대 28개·200명 배치…물리적 충돌 없이 사무실 물품 반출
체육회 "3개월 넘게 업무 차질"…아시안게임 준비 위해 진입 불가피
대한체육회 산하 종목단체들이 8일 경찰의 협조 아래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 내부에 진입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개표소 봉쇄 시위가 시작된 지 95일 만이다. 지난 6월 16일 이른바 '올다르크'의 저지로 대한체육회 차원의 진입이 무산된 이후로는 84일 만이다.
대한핸드볼협회와 대한펜싱협회, 대한산악연맹, 대한우슈협회, 대한세팍타크로협회 등 경기장 내부에 사무실을 둔 대한체육회 산하 9개 회원종목단체 직원들은 이날 오전 9시 개표소 주변에 모였다.
서울경찰청은 대한체육회의 업무 협조 요청에 따라 공공안전차장을 현장 지휘 총괄로 투입했다. 기동본부장과 송파경찰서장도 현장에서 상황을 지휘했다.
경찰은 올림픽공원 일대에 28개 기동대를 배치하고 출입 게이트에는 기동대원 200명을 투입했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시위 참가자들의 이동도 제한했다.
종목단체 직원 수십명이 2~3번 게이트로 이동하자 주변에 있던 시위 참가자 50여명이 몰려들었지만 경찰에 막혀 접근하지 못했다. 봉쇄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현장 참가자 규모는 이전보다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오전 9시 13분 출입문이 열리자 일부 시위 참가자는 경찰을 향해 "왜 들어가려는 거냐", "증거를 훼손할지 어떻게 아냐", "전에는 시민들과 함께 들어가기로 협의했는데 오늘은 왜 협의하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경찰이 바리케이드와 인간 띠를 만들어 시위 참가자들의 통행을 막으면서 별다른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종목단체 직원들은 오전 9시 20분부터 경기장 내부의 각 사무실로 이동해 필요한 업무 물품을 챙겼다. 종목명이 표시된 상자에 서류와 컴퓨터 본체·모니터, 의류와 각종 업무 자료 등을 담아 반출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 이태한 선거관리위원회 특별검사팀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먼저 개표소에 들어가 투표용지 등에 대한 안전 조치를 했다.
대한체육회는 3개월 넘게 경기장 내 사무실 출입이 제한되면서 각 종목단체 업무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져 이번 진입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도 여러 차례 개표소 진입 필요성을 전달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자 최근 경찰과 협의해 이날 진입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체육회는 언론 공지를 통해 "각 단체의 행정업무와 대회 운영, 국가대표 선수단 지원 등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체육회는 입주 단체의 최소한의 업무 정상화를 위해 사무실에 보관 중인 컴퓨터와 전산 장비, 업무 파일, 서류, 회계 자료, 대회 운영 물품, 국가대표 훈련 및 대회 참가 관련 물품 등 필수 업무 물품을 반출하고자 경찰 등과 협의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4일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에 핸드볼경기장 진입 협조 공문을 발송했고, 서울경찰청의 협조를 받아 이날 진입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오는 19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제20회 아이치·나고야 하계아시안게임 준비를 위해서도 사무실 출입이 필요하다는 게 대한체육회 측 설명이다.
대한체육회의 경기장 진입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봉쇄 나흘째였던 지난 6월 9일 처음 진입을 시도한 뒤 여러 차례 내부로 들어가려 했으나 시위대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6월 16일에는 9개 종목단체가 국민의힘 중재와 경찰의 도움을 받아 출입문 앞까지 접근했지만 한 여성 시위 참가자가 문손잡이를 붙잡고 비켜주지 않으면서 결국 진입하지 못했다.
당시 일부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여성을 '올림픽공원 잔다르크'의 줄임말인 '올다르크'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후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지난 7월 2일 현장 검증을 위해 핸드볼경기장 내부에 들어갔지만 종목단체 직원들의 진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개표소 내부에 보관된 투표함과 투표용지 등을 회수하거나 재검표하기 위한 별도 조치에는 나서지 않을 방침이다.
앞서 '6·3 투표용지 부족 사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개표소 공개 재검표 등을 추진했지만 재검표 방식과 절차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