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이민호] 서울시민이 돌아간 이후

입력 2025-05-07 18:42:09

세종본부 이민호 기자

이민호 세종본부 기자
이민호 세종본부 기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2차 경선에서 탈락한 뒤 "더 이상 정치하지 않겠다"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대구에서 중·고교를 졸업하고, 제21대 국회에서는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구을에 출마해 5선 국회의원 반열에 오른 뒤 대구시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네 차례 국회의원을 한 그에게 대구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마지막 만큼은 대구시민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남겼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발언은 "갈등의 현장에서 벗어나 서울 시민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결국 대구는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며 씁쓸함을 느꼈다는 대구시민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대선 경선 출마 당시 TK신공항 건설, 대구 군부대 이전, TK행정통합 등 주요 지역 현안에 대해 "특별한 책임감을 갖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 받아들인 시민은 많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경선에서 탈락하자 본인이 띄운 정책과 공약의 후속 조치에는 관심을 접고 '인생 3막'을 구상한다며 미국행을 예고했다.

그렇게 홍 전 시장이 대구시와 정계를 뒤로 하고 떠나면서, 대구 핵심 사업은 곤궁한 처지가 됐다. 대표적 사례가 TK신공항 예산 확보 문제다. 대구시는 군공항 이전에 필요한 약 13조원을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융자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홍 전 시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요구했던 사안으로, 대구시 측은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공자기금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 실무진은 이 방안에 회의적이다. 공자기금은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는 국가 재정의 '저수지'로 불리지만, 융자는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일이 될 텐데 그만한 대규모 금액을 조달하는 게 가능하냐는 분위기다. 기재부와 국토교통부 등은 현재 TK신공항 기본계획을 논의 중이며, 예산 조달 방안이 확정되면 사업 추진에 날개를 달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늪에 빠진 것만 같다.

애초에 특별법이 '현실적인 공항 개발 방안이었나?' 하는 의문도 든다. 기부 대 양여를 전제로 한 공항 건설 모델에 참여할 민간 기업이 있었는지, SPC(특수목적법인) 방식이 현실성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대안이 절실한 지금, 문득 2023년 TK신공항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를 누비던 홍 전 시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대구경북 국회의원들과 함께 정부 관계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하겠다며 회의실 문을 걸어 잠근 적이 있었다. 그날 회의실 밖에서도 '차기 잠룡' 홍 전 시장이 책상을 두드리며 핏대를 높이는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당시에는 '이런 식의 압박이 과연 통할까' 싶었지만, 결국 특별법이 처리되자 '때로는 정치적 고집도 결과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더는 책상을 두드리고 땅땅 소리지른다고 될 때가 아니다. 대선이 코앞이다. TK신공항 건설은 대구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 현안이다. 이를 성사되게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를 풀어야 한다. 더 나아가 정치권에서 오가는 말이 대구의 미래를 위한 공약이 현실 가능한 것인지 검증하고, 더 정교한 계획 세우기, 옥석 가리기가 필요해 보인다. 시간은 대구의 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