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박승혁] 포항의 잃어버린 6년, 휘청이는 지역 경제

입력 2025-08-14 17:40:28 수정 2025-08-14 19:09:47

박승혁 사회2부 기자
박승혁 사회2부 기자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1번지, 경북 포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지역 성장을 견인하는 두 개의 큰 성장 동력인 철강과 2차전지가 바닥을 치면서 현재 포항은 미래 희망조차 얘기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철강은 글로벌 시황 악화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지난 8개월간 이어진 포항제철소의 적자가 단순 외부 환경 탓만 하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최근 흑자를 내긴 했지만 평소의 100분의 1 수준인 10억원에 그쳤다.

그렇다면 같은 글로벌 환경에 놓인 광양제철소는 현재 어떠한가. 올 들어 연속 흑자를 내며 포스코를 먹여 살리다시피 하고 있다. 철강 팔아 돈 벌고 남은 전기 팔아 이익 남기고, 광양은 지금 더 큰 성장 중에 있다. 오죽하면 직원들은 임원들의 인사말이 '광양에서 시작해서 광양'으로 끝난다고 할 정도다.

철강 맏형 포항이 이렇게까지 힘들게 된 이유는 뭘까. 포항제철소를 집어삼킨 태풍 힌남노(2022년)의 여파도 컸지만 많은 이들은 '포항의 잃어버린 6년'을 주범으로 지목한다.

지난 2018년 7월~2023년 3월, 이 기간 경북 포항 경제는 이강덕 시장과 최정우 전 포스코 그룹 회장 간 감정싸움에 휘말려 방향성을 잃어 갔다.

이 시장은 최 회장의 저자세를 요구했고, 최 회장은 이에 대한 반발로 지역 투자를 회피했다. 급기야 최 회장은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를 만들어 포스코 본사 기능을 서울로 끌고 가 버렸고, 각종 투자도 인재 유치를 이유로 수도권에 집중했다.

창사 이후 한 번도 빼먹지 않았던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한 학교(포스코교육재단 산하) 운영비마저 모두 회수해 갔으니 다른 분야는 더 볼 것도 없을 정도였다.

'미운 포항'에 줄 미래 먹을거리는 없었다. 이 기간 10조원에 달하던 포항침상코크스 공장은 포항을 떠나 광양에 둥지를 틀었다. 당초 2017년 약 59만5천㎡(18만 평) 규모의 공장 건립이 포항에 예정됐지만 부지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포스코는 광양행을 택했다. 지역사회에서는 즉각 반발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또 비슷한 기간 공장 투자비만 1조원에 달하는 전기강판 4공장이 광양행 버스를 탔다. 포항제철소 내 조성된 1, 2, 3공장과 연계해 지어질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깬 광양 투자였다. 전기강판은 까다로운 생산 방식과 오랜 노하우가 필요한 품목이어서 포항이 공장을 독점해 왔지만 이때도 부지 확보가 불가능하다며 광양에 공장을 건설했다. ​

제철소 내 발전소 건립에도 무심했던 포항은 결국 전기로마저 광양제철소에 내줬다. 2026년 가동 예정인 광양제철소 전기로 공장(연산 250만t)은 수전 비용을 저렴하게 확보한 광양 차지가 당연했지만 포항으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이 외에도 포스코는 광양국가산단에 또 한 번 1조원 규모의 에너지 사업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광양 투자를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마련된 철강 인프라가 최근의 포스코 신규 투자까지 흡수하는 것이다.

포항시는 늦었지만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취임과 함께 빠른 관계 개선을 시작했다. 최근 수소환원제철 사업에 손을 맞잡으며 공장 부지 확보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역 경제인들은 6년간 등진 시간을 지금이라도 만회하겠다고 나서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현재 포항의 경제 상황을 돌아보니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결과물을 보는 것 같아 여간 답답한 게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이 시장이 불편하더라도 속으로 삼킨 뒤 실리적인 '후흑학'을 실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포항과 달리 광양·여수·순천 단체장들이 포스코 임원들을 보면 반갑게 맞아 주고 먼저 손을 내미는 데는 '내가 아닌 우리 지역 경제가 우선'이라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