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호 전 부장판사, 동대구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집권 여당이 현재 14명인 대법원의 대법관 정원을 12명 늘려서 총 26명으로 하겠다는 사법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대법원의 사건 처리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대법관 정원도 증원해야 한다는 논리다.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은 대법원의 기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대법원을 중요 사건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갖는 정책법원으로 하려면 대법관 수를 제한하여야 하고, 소송사건 처리 기능에 중점을 두는 실무법원으로 하려면 대법관 수를 늘려야 한다. 지금 현재 집권 여당은 대법원을 정책법원, 최고법원으로 만들 생각이 없고 실무법원, 준최고법원으로 만들어 제4심으로 헌법재판소를 구상하고 있는 것 같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에 의하면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헌법소원의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제외한다고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 규정에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이라는 부분을 삭제하면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제4심으로 심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긴다. 지금도 헌법재판소는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하여 피해자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사건이 제일 많다.
헌법재판소를 제4심으로 하면 헌법재판소의 업무가 폭증할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 대법원 사건의 20퍼센트(%) 정도만 헌법재판소에 재상고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기존 헌재 재판관 및 연구원을 두 배 정도 증원하여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관의 역할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소수정예주의를 취하는 미국·일본 모델과 다수 실무주의를 취하는 독일·프랑스 모델이 있다. 일본은 최고재판소 재판관 정원이 오랫동안 15명으로 정해져 있고,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은 9명에 불과하다. 미국 대법관 임기는 종신직이므로 사퇴하거나, 노령으로 업무능력이 상실되거나, 사망하지 않으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서 종신까지 근무할 수 있는 직책이다. 그래서 대통령 재직시에 한두 명의 대법관만 임명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하여 독일은 단일한 대법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민·형사, 행정, 재정(조세), 노동, 사회(복지) 부분별로 연방최고법원이 있어 실무 중심의 대법관을 운용하고 있다. 연방최고법원 판사를 모두 합하면 약 350명 정도라고 한다. 우리처럼 대법관 14명과 그 수하에 있는 100여명의 판사(재판연구관)을 합한 숫자 보다도 월등히 많다.
프랑스는 대혁명 이래로 변혁을 선호하여 최고법원의 이름도 파기원(Cour de cassation, 꾸르 드 까샤숑)이라고 붙이고 있다. 행정소송사건의 최고재판소는 국사원(Conseil d'État, 꽁세이 데타)이라고 하여 행정부 내에 별도의 독립된 재판기관을 두고 있다. 이 국사원은 재판기능 외에도 의회의 법률안, 행정부의 행정입법을 자문, 심사하는 역할도 있다. 우리나라의 법제처, 국민권익위원회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프랑스도 역시 최고법원 판사의 수가 국사원을 포함하여 약 250명 정도라고 한다.
세계 선진국은 모두 이 두 가지의 모델을 사용하고 있고, 30명 내외의 대법관을 운용하는 나라는 남미 등 저개발 독재국가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경우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면 이재명 대통령 재임시에 신규 12명, 결원 보충 10명 등 22명을 순차적으로 임명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법원은 대통령에 종속되는 부서로서 3권 분립이 해체된다고 봐야 한다. 이름도 대법원이 아니라 상고법원으로 바꿔야 할 판이다.
한국도 미국, 일본과 같이 대법관의 정예화로 사법권의 독립을 이루어 냈고 한국의 민주화, 현대화에 기여하였다. 그런데 대법관의 대폭 증원은 헌재 재판관의 대폭 증원을 불러와 사법 과잉이 될 우려가 있다. 국가의 정책 역량을 이공계에 투입하여야 하는 시점에서 사법의 비대화는 시대의 요청에도 반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