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김종민] 법치주의의 종언

입력 2026-03-04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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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MK 파트너스)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MK 파트너스)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MK 파트너스)

코스피 6000의 환호 속에 소위 '사법개혁 3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왜곡죄 신설, 14명인 대법관의 26명 증원, 재판소원제 도입은 모두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본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법왜곡죄는 무엇이'법왜곡'인지 판단 기준과 판단 주체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하급심과 상급심 판결이 엇갈리면 당사자는 법왜곡죄로 판사를 고소할 가능성이 높고 대법관도 예외가 아니다. 법왜곡죄 판결 자체를 법왜곡죄라고 수사하고 재판하는 무한반복의 지옥문이 열리게 된다. 집권 정치권력이 인사권으로 통제하는 경찰은 정치적으로 선별해 판사와 검사를 수사할 수 있고 수사대상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탄핵과 징계대상이 될 수 있으니 사법부 독립은 무의미하게 된다.

대법관 증원은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 등이 써먹었던 고전적 민주주의 파괴 수법이다. 2004년 차베스 정권은 20명인 대법관을 32명으로 늘리면서 '혁명적인' 측근들을 임명해 9년 동안 정부에 반대하는 판결을 0건으로 만들었다.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한 민변 변호사와 법학교수 566명 중에서 '충성스런' 22명의 대법관을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37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대법원 재구성'의 이름으로 연방대법관 증원을 추진할 때 집권 민주당조차 반대해 좌절시켰던 교훈을 잊으면 안된다.

헌법재판소의 재판소원 신설은 확정판결 지연으로 인한 법적 분쟁의 장기화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것은 '사법의 정치화'다. 헌법재판관 9인 중 대통령과 국회에서 선출한 6명을 임명하는 제도 하에서 대법원 판결을 헌재의 심판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면 헌재가 '헌법 수호기관'이 아니라 '권력 수호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은 예정된 운명일 수 밖에 없다. 스티븐 래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말했던 또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의 죽음이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파시즘은 화려하게 등장한 적이 없다. 토머스 에디슨은 그를 '근대의 천재'라고 했고, 간디는 '수퍼맨'이라 칭송했다. 윈스턴 처칠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려는 레닌주의의 짐승 같은 식욕에 맞선 그의 투쟁'을 지지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 때문에 국민 대부분은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한다. 작은 공격이 더 큰 공격이 되고 반대 목소리가 묻혀 버리는 순간이 위험하다. 윤석열 정권 시절 총 29건의 탄핵으로 정부를 마비시켰고, 검찰을 해체한 뒤 경찰에 모든 수사권을 몰아주는 중국식 공안통치 체제가 완성됐다. 정치 권력이 선출한 매머드급 특검의 정치적 수사는 일상이 되었고 대법관 증원으로 마침내 사법부도 장악됐다.

독약은 금잔에 담겨 나오는 법이다. 모든 것이 합법과 제도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본질은 헌법과 법치주의의 파괴,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위기다. 우리 헌법의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의 지배'가 아니다. 법치국가에 의해 구속을 받는 민주주의, 즉 다수의 정치적 지배를 법치국가적으로 제한하는 '자유민주주의'다. 사법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공정한 재판이다.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도 이를 보장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에 반하는 개혁은 결코 개혁일 수 없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물질적 풍요나 국력이 아니다. 국민의 자질과 지도자의 비전이다. 역사가 위대한 이유는 광대한 비인간적 힘에 자리 내주기를 거부하는데 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른 존재에게 전가하는 사회는 존속될 수 없다. 국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권력 다툼으로 극심한 분열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야당과 증시 호황에 정신이 팔려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국민들이 무서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최고의 엘리트라 자부했던 전직 대법관들과 판사들의 목소리는 왜 아무 곳에서도 들려오지 않는가.

마키아벨리는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는 자, 그 누가 도우려 할 것인가"라고 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길바닥에 버려져 뭇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처량한 신세가 되는 것이 세상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