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김성준] 무엇을 위한 개헌인가

입력 2025-04-16 11:03:00 수정 2025-04-16 11:03:23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이달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인용하면서 지난 대선 3년 만에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우리나라 헌법 제68조 2항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6월 3일 대통령 선거일이 확정됐다. 결국 이 기간 안에 경선과 본선을 치르기 위해서 정치권은 이미 대선 레이스에 돌입했으며, 또 한바탕 대한민국은 정치 놀음으로 분주해지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슈가 바로 '개헌'이다. 같은 당내에서도 후보 간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둥, 대선과 함께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둥 각양각색의 명목으로 공방이 이어지고 있으며, 내년 지방선거까지 들먹이며 치열한 설전이 오가고 있다.

사실 개헌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 후보들마다 대선 공약으로 개헌을 약속했고, 선거가 끝나면 개헌 논의는 슬며시 흐지부지되는 것이 늘 관례처럼 반복되었다. 그렇다면 개헌에 관한 국민의 입장은 어떨까. 중앙일보가 한국갤럽 의뢰를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개헌 필요성을 물은 결과 '필요하다'는 응답은 67%, '필요하지 않다'는 21%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50대 이상에서의 찬성률이 70%에 가까웠고, 40대 이하에 비해 개헌 찬성 여론이 강했다.

그런데 개헌을 찬성하는 국민들이 개헌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아니, 보다 본질적으로 헌법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근대 이후 입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의 헌법은 대부분 독립 후 미국의 헌법을 기초로 하고 있다.

미국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정치체제의 조직과 운영에 관해 규정한 최고의 효력을 가진 기본법으로 연방정부의 모든 권한은 헌법에 기초한다. 정부는 오직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권한 만을 행사할 수 있는 '제한적 권한(limited powers)'만을 가지고 있다.

미국 헌법의 목적은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또 어떤 경우에도 이를 함부로 제한하지 못하도록 정부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는 데 있다. 헌법이 정부의 막강한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정당한 법 절차 없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없다. 또한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한 보상 없이 개인의 재산이 수용당하지 않을 권리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법'이라고 하면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고 구속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헌법은 국가가 시민을 구속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와 반대로 헌법은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는 수단으로써 정부가 시민의 삶과 이익을 지배할 수 없도록 국민이 정부를 통제하는 도구이다.

역사적으로 대중 민주주의는 자칫 국민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을 낳았다. 민주주의는 늘 선동 정치가들의 악의와 기만으로 대중을 쉽게 타락의 길로 인도한다.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국민 주권을 실현하고자 하지만 그렇게 선출된 정부에 헌법적 제한을 가하지 못하는 나라는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인 제임스 뷰캐넌은 입헌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은 정부가 아니라 헌법이라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는 국가의 주인인 시민이 정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리인인 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구속하는 '헌법 실패'의 시대에 살고 있다.

헌법 실패는 시민의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시장질서를 왜곡하는 정부 실패보다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독재와 전체주의의 길로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개헌, 필요하다면 해야 하고 또 할 수도 있다. 다만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개헌 논의가 과연 국민의 자유를 더욱 보장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인의 무소불위의 권력 남용을 부추기고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인지 엄격하게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