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본 김에 떡 먹는다' 시민·무속인 모두 한마당 된 팔공산 천왕 굿거리

입력 2024-04-14 15:25:27

지역민 안녕과 발전 기원하는 마을 축제 성격
1987년부터 복원, 코로나19 이후로는 5년 만에 처음 열려
20도 넘는 초여름 날씨에 비지땀 흘려가며 굿 나선 무당들
‘파묘’에서 본 ‘오싹한’ 굿과는 다른 ‘잔치같은 굿' 반응도
"지역민 대표 기도처, 대구경북 관광상품으로 육성도 가능"

14일 대구 동구 팔공산에서 팔공산 천왕 굿거리를 앞두고
14일 대구 동구 팔공산에서 팔공산 천왕 굿거리를 앞두고 '부정청배굿'이 열리고 있다. 이정훈 기자

영남지역 무속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팔공산 천왕굿거리가 코로나19 이후 5년 만에 열렸다. 대중문화 등을 통해 무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열린 이번 행사는 시민들의 높은 호응 속에 지역과 지역민들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했다.

14일 오전 10시쯤 찾은 팔공산 동화지구 분수대 광장 인근, 청명한 봄 하늘 아래에서는 멀리서부터 장구치는 소리와 해금 소리가 흥겹게 퍼져나갔다.

대구경북민속문화연구보존회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대한무속회가 주관하는 팔공산 천왕굿거리는 맥이 끊긴 영남지역 대표굿을 31년째 보존하는 행사다. 음력 3월마다 '영험한 팔공산 산신'께 대제를 올리는 이번 행사는 우리나라 마을마다 열리던 대동굿처럼 마을 축제의 일종으로 1987년부터 시작했다.

이날 행사는 곽명숙 주무가 이끄는 10여명의 부정청배 굿으로 막을 올렸다. 본 굿의 시작에 앞서서 제단 주변의 부정한 것을 정화하는 부정굿과 신의 강림을 요청하는 청배굿은 민간신앙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푸른색 무복을 입은 참가자들은 장구와 해금연주자가 만드는 흥겨운 장단과 가락에 맞춰 수 십분동안 화려한 굿을 선보였다. 무당들은 신(神)바람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제자리를 뛰었으며, 또 숨도 쉬지 않고 원을 그리며 '접신'의 경지를 선보였고, 이를 지켜보던 관객 100여명은 박수를 보냈다.

14일 대구 동구 팔공산에서 열린 팔공산 천왕 굿거리 중 천왕굿이 열리고 있다. 이정훈 기자
14일 대구 동구 팔공산에서 열린 팔공산 천왕 굿거리 중 천왕굿이 열리고 있다. 이정훈 기자

이날 굿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천왕굿이었다. 신라시대의 선덕여왕이 때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지는 천왕굿은 무형문화재이기도 한 장태문 대구경북민속문화연구보존회장이 이끌었다.

10여명의 붉은 무복을 입은 무당들에게 둘러싸인 장 회장은 노란 무복을 입고 "여기 온 모든 사람들 올 한해 모든 일이 잘 풀리도록 천왕께 빌겠다"라고 말하며 굿을 이끌었다. 장 회장이 때때로 농이 섞인 덕담을 던지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100명이 훌쩍 넘어 보이는 관객들도 현장을 찾아 굿을 지켜봤다. 등산을 하러 온 김에 구경을 왔다는 문모(76) 씨는 "친구들과 등산 왔다가 재미있어서 한 시간째 보고 있다"라며 "'떡 본 김에 굿 한다'라는 말 있잖냐, 나도 굿 보러 온 김에 떡도 얻어먹어서 좋다"라고 주최측으로부터 나눠받은 떡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최근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파묘'로 무속신앙과 문화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굿을 마친 무당들의 모자 등에 복채로 현금을 꽂아주며 복을 기원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14일 대구 동구 동화지구 인근 팔공산 자락에서 열린
14일 대구 동구 동화지구 인근 팔공산 자락에서 열린 '팔공산 천왕 굿거리'에서 오후 식순으로 '12작두굿'을 벌이는 모습. 이정훈 기자

주말을 맞아 가족들과 팔공산을 방문한 대학생 이모 씨는 "영화에서 보던 굿과는 조금 다르지만 실제 굿을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다"라며 "다만 영화에서는 조금 오싹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이었다면 이 굿은 잔치같이 보이는 차이점이 있다"고 했다.

오승호 대구경북민속문화연구보존회 상임부회장은 "굿은 혼을 달래고 어루만지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다"라며 "한국의 전통적이고 가치있는 관례들이 잊히지 않고 이어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행사를 주관한 이현희 대한무속회 이사장은 "팔공산은 국가수호와 지역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처다. 시대에 따라 제의의 성격과 의미도 달라졌지만 인간의 염원은 미래사회에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대구경북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개발해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