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새 대구 어린이집 274곳 유치원 32곳 문 닫아…아이·부모 '발 동동'

입력 2023-04-03 10:51:30 수정 2023-04-05 14:06:14


저출산으로 원아 모집 어려워 경영난… 월급 못 줘서 원장이 직접 셔틀 운전

유치원 학부모에게 폐원 안내를 한 대구의 한 유치원에서 7일 오후 하원시간에 원생과 학부모가 함께 유치원을 나서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유치원 학부모에게 폐원 안내를 한 대구의 한 유치원에서 7일 오후 하원시간에 원생과 학부모가 함께 유치원을 나서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중구에서 14년간 민간어린이집을 운영한 원장 A씨. 신입생 정원 33명 가운데 이번 신학기엔 17명밖에 채우지 못해 학기 초부터 눈 앞이 캄캄했다. A씨의 어린이집은 인건비 지원이 안 이뤄지는 민간어린이집이기에 미충원 인원 한 명당 입는 타격이 매우 컸다. 교사 4명의 인건비, 월세, 전기세, 공기청정기 및 냉난방기 한 달 대여비만 해도 이미 마이너스라 조리사를 도저히 채용할 수 없었다. 결국 A씨는 원장인 자신이 직접 17명 원아의 급식을 준비하고 있다. A씨는 "급식뿐 아니라 오전, 오후 간식도 손수 챙긴다"며 "이런 상황에 어린이집 운영, 회계 관리, 각종 서류 작업 등 원장 본연의 업무에 할애할 시간이 없어 야근은 일상이 됐다"고 털어놨다.

#달서구 한 사립유치원 원장 B씨는 25년간 운영해온 유치원을 지난 2월 28일자로 폐원했다. 지난해 정원 230명에 50명밖에 원아를 채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1년간 휴원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폐원 결정을 알렸을 때 유치원 운영위원회 학부모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B씨는 "5년 전부터 유치원 근처에 사는 아이들 수가 줄어 먼 곳에 사는 아이들을 모으기 위해 차량도 운행해봤지만 가뜩이나 정원 미달로 수입이 줄어든 마당에 차량 기사 인건비까지 나가니 타격이 컸다"고 말했다.

저출산 여파로 문을 닫는 대구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2023년 3년 새 지역 어린이집 274곳(국공립 전환을 위한 폐원은 제외)이 문을 닫았다.

매년 1월 1일 기준 대구 내 어린이집 수는 ▷2020년 1천323곳 ▷2021년 1천270곳 ▷2022년 1천184곳 ▷2023년 1천139곳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특히 같은 기간 민간 어린이집은 ▷2020년 572곳 ▷2021년 516곳 ▷2022년 447곳 ▷2023년 402곳으로 감소세가 가팔랐다.

대구시교육청을 통해 파악한 유치원 현황도 어린이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19~2022년(매년 4월 1일 기준) 지역 유치원 수는 345→340→333→314곳으로 점점 줄고 있었다. 이 기간 폐원한 유치원은 모두 32곳에 달했다.

주된 폐원 이유는 원아 모집 어려움으로 인한 운영난이 대부분이었다.

올해 신입생 정원 63명 중 39명밖에 채우지 못한 어린이집 원장 C씨는 "현재 운전기사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내가 직접 어린이집 셔틀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며 "이렇게 까지 하는 데도 매달 적자가 기본적으로 100만~200만원이 나와서 원장으로서 나 자신의 인건비는 챙기지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유치원, 어린이집 폐원이 잇따르는 이러한 상황에 학부모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2018년 개정된 '유아교육법시행령'에 따라 학기 중에는 폐원을 할 수 없는 유치원과 달리 어린이집은 여전히 학기 중에 폐원이 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영유아보호법 시행규칙에 따라 폐원 전 2개월 전까지 폐원 예정을 학부모에게 알리게 돼있지만, 여건에 맞는 어린이집이을 고르는 데 2개월은 충분치 않을 수 있다.

달서구에서 5살 딸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 A씨는 "지난해 9월에 다니던 어린이집이 폐원을 했다"며 "맞벌이다 보니 학기 중에 괜찮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찾아다니느라 너무 바빴다. 당장에 보낼 수 있는 곳을 보내야 해 선택권이 많지 않아 집에서 좀 거리가 있는 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 어린이집에 정이 컸던 아이를 달래는 일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줄폐원 움직임은 해당 어린이집·유치원만의 단순 고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아와 학부모에게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교육당국이 이를 방치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승현 새싹부모회 대구지회장은 "폐원에 따라 유아교육의 다양성과 연속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학부모의 선택권이 줄어들고 육아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문 닫는 유치원, 어린이집 방치는 결국 유아에게 돌아오는 서비스 질 하락, 학습권 침해 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유아들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당국은 이러한 상황을 좌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