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부터 산업단지까지 외국인 상권 확산
북부정류장·논공읍에도 외국인 식료품점·음식점 잇따라
외국인 노동·소비 지역경제 한 축…'공존' 정책 필요
대구의 오래된 골목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전통시장에는 외국인 상인들이 운영하는 점포가 하나둘 늘어나고, 산업단지와 대학가 주변에는 다양한 국적의 음식점과 식료품점이 자리 잡았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외국인주민들이 지역 상권과 일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 와룡시장 다국적 상권…외국인 점포 25곳
지난 4일 찾은 대구 달서구 신당동 와룡시장. 아케이드 아래 한국어와 베트남어, 중국어, 영어로 적힌 간판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베트남 국기가 그려진 노란 간판 아래에서는 쌀국수와 반미를 팔았고, 주변에는 해산물 가게와 미용실, 아시아 식료품점 등이 자리했다.
식료품점 선반에는 중국식 면류와 태국산 타마린드 사탕, 말린 과일 등 국내 마트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상품들이 빼곡했다. 냉장고에도 망고·구아바·코코넛 음료가 줄지어 있었다.
1년 전 생선가게를 연 A씨(50)도 외국인 상인과 주민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A씨는 "와룡시장에 다른 외국인 가게가 많고, 외국인주민도 많이 있어서 익숙함에 선택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이곳에서 생계를 꾸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와룡시장 상인회에 따르면 현재 외국인이 운영하는 점포는 모두 25곳이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파키스탄, 몽골, 중국, 미얀마, 필리핀 등 다양한 국적의 상인들이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베트남 음식점을 운영하는 B씨(42)에게 가게는 고향 사람들과 만나 정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 B씨는 "고향 음식이 생각날 때 찾아오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다"며 "이제는 단순히 음식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서로 만나고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인근 산업단지와 대학교도 다국적 상권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상인회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들이 주변에 거주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가게가 하나둘 늘어났다"며 "10개국 음식을 선보이는 '세계인의 맛 축제'를 개최하는 등 내·외국인 주민들의 교류에도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 북부정류장~논공읍…외국인이 바꾼 골목 풍경
서구 비산동 북부정류장 일대에도 외국인 생활권이 형성돼 있다. 오래된 주택과 상가가 밀집한 골목에는 아랍어와 영어로 적힌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할랄 음식점과 외국 식료품점, 정육점 등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고 상점 안에는 각종 향신료와 소스, 수입 식품이 진열돼 있었다.
이곳에서 7년째 한식당을 운영하는 중국 연변 출신 C씨(70)는 손님들의 국적이 다양해진 것을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C씨는 "과거에는 중국인 손님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네팔과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이 찾아온다"며 "외국인들이 월세가 저렴한 곳에 모여 살다 보니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실제 북부정류장 인근 부동산에서는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5만원인 방도 찾아볼 수 있었다. 주변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비를 찾아 모여들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상권도 하나둘 들어선 것으로 풀이된다.
달성군 논공읍 달성산업단지 주변에서도 외국인 근로자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골목을 따라 베트남과 태국 식료품점, 휴대전화 판매점 등의 외국어 간판이 줄지어 눈에 들어왔다. 가게 안에는 향신료와 소스, 과자 등이 진열돼 있었고 일부 점포에서는 신발과 의류를 길가에 내놓고 판매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 일대 상권의 주요 소비층이기도 하다. 인근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D씨(75)는 "가게에서 돈을 쓰는 사람들 중 80%는 외국인"이라며 "지역 전체가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논공읍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지역 산업과 상권을 떠받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고된 산업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며 "외국인 근로자들이 없으면 지역이 위태로울 정도"라고 강조했다.
◆ '동화' 아닌 '공존'…지역사회 통합이 과제
신당동과 비산동, 논공읍에 외국인 생활권이 형성된 배경에는 산업단지와의 접근성,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비와 임대료 등이 있다. 법무부의 2026년 9월 말 기준 등록외국인 현황에 따르면 달서구 신당동이 7천931명으로 가장 많았고, 달성군 논공읍(2천909명), 서구 비산7동(1천228명)에도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다.
외국인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과 식료품점도 하나둘 들어섰다. 이들 점포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넘어 외국인주민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고향 음식을 먹고 모국어로 대화하며 향수를 달래는 것은 물론, 일자리와 체류자격, 주거·의료 등 한국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나누는 장소이기도 하다.
외국인 상권이 커지면서 골목에 새로운 소비층이 유입되고 빈 점포가 활용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기존 상인들과의 이해관계나 문화·생활방식의 차이로 갈등이 빚어질 수 있는 만큼 지역사회 차원의 소통과 상생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병운 경북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는 "외국인 상권의 성장이 지역사회의 긍정적인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동화'가 아닌 '공존'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내·외국인이 일상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기존 상인과 외국인 상인이 함께 참여하는 상생협의체 등을 통해 소통 창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외국인 밀집지역을 내국인과 분리된 공간으로 두기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의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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