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채로 파먹는 기생벌…진화는 왜 '되돌아가지 않았나'

입력 2026-11-07 10: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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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자연사박물관 국제 연구팀, 다윈벌 697종 유전자 분석…기생 전략 진화에 '방향성' 확인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이 이끈 국제 공동 연구팀이 다윈벌 697종의 유전자를 분석해 숙주 몸속에 알을 낳는 기생벌의 진화 전략이 되돌아가지 않고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AI 생성 이미지)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이 이끈 국제 공동 연구팀이 다윈벌 697종의 유전자를 분석해 숙주 몸속에 알을 낳는 기생벌의 진화 전략이 되돌아가지 않고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AI 생성 이미지)

살아 있는 애벌레 몸속에 알을 낳고, 부화한 유충이 숙주를 천천히 파먹어 죽이는 기생벌의 진화 전략이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수십 차례 반복된 이 전환이 단 한 번도 되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화에 '일방통행'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주목받고 있다.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이 이끈 국제 공동 연구팀은 다윈벌(Ichneumonidae) 697종의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Current Biology*에 실렸다.

다윈벌은 기생성 말벌의 일종으로, 애벌레·딱정벌레·거미 등 살아 있는 숙주의 몸 안이나 몸 위에 알을 낳는다. 부화한 유충은 숙주를 서서히 먹으며 성장하고, 결국 숙주는 죽는다. 기재된 종만 2만 5,000종이 넘는 이 곤충과(科)는 찰스 다윈의 이름을 땄다.

다윈이 이 벌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은 신학적 고민 때문이었다. 1860년 미국 식물학자 에이사 그레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살아 있는 애벌레 몸속을 먹고 사는 생물을 자비로운 신이 의도적으로 창조했을 리 없다고 의문을 표했다. 이 언급이 훗날 이 곤충과에 '다윈벌'이라는 이름이 붙는 계기가 됐다.

연구팀은 다윈벌의 두 가지 핵심 기생 전략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추적했다. 첫 번째는 숙주를 영구 마비시켜 죽인 뒤 몸 위에서 기생하는 방식, 두 번째는 숙주를 살려두면서 몸속이나 몸 위에서 기생하는 방식이다. 분석 결과, 숙주를 영구 마비시키는 전략에서 살려두는 전략으로의 전환이 최소 23회 독립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역전 사례, 즉 살려두는 방식에서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되돌아간 경우는 단 한 건도 확인되지 않았다.

숙주 몸 밖에서 기생하는 방식(외부기생)에서 몸 안으로 파고드는 방식(내부기생)으로의 전환도 마찬가지였다. 이 역시 여러 차례 반복됐지만 역전은 극히 드물었다.

연구를 이끈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의 베르나르도 F. 한 연구원은 "진화가 반드시 모든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번 분석이 진화가 반복 가능하면서도 강한 방향성을 가질 수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697종은 다윈벌의 모든 주요 계통을 망라한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