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수사기관 독립… 로마 모든 관직은 복수, 권력 분립

입력 2026-10-26 0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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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수사든 특허든 대통령의 책임과 권한에 속한다"… 들러리된 수사기관
B.C. 4세기 ~ B.C. 1세기 로마 공화정도 권력 집중 막고 견제하는 기능 확보
공화국 원칙 깬 카이사르의 비참한 말로… 독재의 끝은 비참하다는 역사의 교훈

폼페이 선거 홍보 문구.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매몰됐다가 1748년 이후 화산재를 털고 되살아난 폼페이 아본단자길의 다층주택 인술라 벽에는 지지자들이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폼페이 선거 홍보 문구.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매몰됐다가 1748년 이후 화산재를 털고 되살아난 폼페이 아본단자길의 다층주택 인술라 벽에는 지지자들이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수사든 특허든 대통령의 책임과 권한에 속한다"며 새로 만든 수사기관 책임자 중대범죄수사청장과 경찰청장을 국무회의에 들러리 세웠다. AI '제미나이' 답변을 논거로 삼는 촌극(寸劇) 속에 "중수청 수사 지휘 포기는 탄핵 사유"라며 수사기관을 종속시키겠다는 대통령의 행태는 AI시대 '빅 브라더'로 가는 지름길이다.

대통령 지시를 받아적는 수사기관 책임자의 길 잃은 신파극(新派劇)은 어디선가 익숙히 보던 풍경이다. 북한이다.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성을 확고히 지키겠다"는 중수청장의 낯선 다짐은 낯익은 양두구육(羊頭狗肉), 빛바랜 개살구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Republic)이다. 공화국은 로마의 레푸블리카(Republica·공화정치)에서 나왔다. 공화국의 원조 로마의 권력기관 상호 견제 역사를 타산지석으로 들여다 본다.

◆폼페이, 선거 홍보 문구와 매년 7월 공직자 선거

A.D.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매몰됐다가 1748년부터 시작된 발굴로 찬란한 로마 문명상을 되살려내고 있는 폼페이로 가보자. 시민들이 집회하고, 거래하던 광장 포럼(Forum)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은 아본단자(Abbondanza)길을 따라 걸으면 서민아파트에 해당하는 다층주택 '인술라'(Insula)가 나온다. 검은 화산재를 털고 일어선 인술라의 흰색 벽면에 붉은 글씨가 눈에 확 띈다. 2천여 년 전 선거 홍보 문구다.

로마는 비록 B.C. 27년 황제정으로 전환됐지만, 자치도시들은 공직자를 자체적으로 뽑았다. 폼페이는 매년 7월 선거를 치렀다. 왜 매년 선거를? 모든 공직자의 임기가 딱 1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혁신적인 민주 제도를 누가 만든 것일까?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있는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조각상. B.C. 4세기 ~ B.C. 1세기 로마 공화정 시절 조각. B.C. 509년 민주혁명으로 왕정제를 뒤엎고, 로마에 공화정을 도입한 공화정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있는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조각상. B.C. 4세기 ~ B.C. 1세기 로마 공화정 시절 조각. B.C. 509년 민주혁명으로 왕정제를 뒤엎고, 로마에 공화정을 도입한 공화정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카피톨리니 박물관 브루투스 - 공화국의 아버지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 이 사람을 만나러 로마의 카피톨리니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B.C. 4세기 ~ B.C. 1세기 로마 공화정 시절 조각으로 추정된다. B.C. 753년 설립된 로마는 왕정이었다. 종신 왕정제를 폐지하고 임기제 공직자가 이끄는 공화국으로 전환한 때가 B.C. 509년이다. 이 민주혁명의 주역이 브루투스다.

브루투스의 위대함은 왕정을 폐지하고 현재의 대통령 격인 집정관(콘술·Consul)을 신설한 데 그치지 않는다. 독재 방지를 위해 2명을 선출하는 공동 집정관제를 만들었다. 왕이 되라는 시민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집정관이 된 것으로 모자라 자신의 권력을 둘로 나눈 진정한 민주주의자 브루투스는 반역죄로 두 아들을 가차 없이 사형시킨다.

이런 공적 마인드가 살아 숨쉰 로마는 B.C. 27년 다시 왕정제로 바뀔 때까지 500년 가까이 '로마 공화국, 레스 푸블리카 로마나(Res Publica Romana)'를 유지한다. 현대 민주 공화국(Republic)의 기원이다.

◆로마 주요 관직… 국민 직접 선출, 임기 1년

500년 공화국 로마의 주요 관직을 살펴보자. ①집정관(콘술)은 오늘날 외교 용어로 '영사'라는 지위로 격하됐지만, 로마시대에는 대통령이다. 집정관을 선출하는 기구는 '켄투리아 민회'(Comitia Centuriata)다. 군대에 편제된 시민 100명 단위로 구성한 의회다. 수도 로마에만 100개가 훨씬 넘었다. 이 켄투리아 민회가 1년에 한 번씩 선거를 치러 2명의 집정관 즉 공동 대통령을 뽑았다.

②법무관(프라이토르·Praetor). 법무관 프라이토르 역시 켄투리아 민회에서 선출했다. 임기는 1년이다. 역할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법 행정을 담당했다. 법정의 재판 절차를 관장하고 소송을 처리했으며, 필요하면 군사 지휘권도 행사했다.

③감찰관 혹은 인구조사관(켄소르·Censor). 켄소르도 핵심 관직으로 켄투리아 민회에서 선출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구 조사는 물론 시민의 재산과 신분을 조사하며 원로원 의원 명부를 심사했다. 공공 계약도 감독했으니 감사원의 기능도 겸했다. 현대 인구조사 용어 '센서스'(Census)는 여기에서 나왔다. 감찰관은 업무 특수성을 고려해 5년에 한 번씩 선출했다.

④공공 재정과 회계 업무 담당 재무관(쿠아이스토르·Quaestor)과 ⑤도로·건축·축제 담당 조영관(造營官·아이딜레·Aedile)은 '트리부타 민회'(Comitia Tributa)에서 1년에 한 번씩 뽑았다. 트리부타는 '부족'이라는 뜻인데, 통상 로마인들이 부족별로 특정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우리로 치면 사실상 '지역구 민회'라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로마 공화국에서는 두 종류의 민회가 있었다. 중요 관직은 거주지에 관계 없이 편제된 군대 소속의 켄투리아 민회, 하위 관직은 사는 지역에 따른 트리부타 민회에서 선출했다고 보면 된다.

⑥호민관(護民官·트리부누스 플레비스·Tribunus Plebis). 평민을 보호하는 관직이라는 의미다. 켄투리아 민회, 트리부타 민회와 달리 평민 신분만 참여하는 평민회(콘킬리움 플레비스·Concilium Plebis)에서 선출했고, 임기는 역시 1년이었다.

로마 포럼. 공화정 시대는 물론 B.C. 27년 로마가 왕정(황제정)으로 전환된 뒤에도 제국 정치의 중심지였다.
로마 포럼. 공화정 시대는 물론 B.C. 27년 로마가 왕정(황제정)으로 전환된 뒤에도 제국 정치의 중심지였다.

◆권력 분립 (1) 집정관(대통령) 2명 합의제, 상호 거부권(Veto)

이제 로마 공화국이 어떻게 하나의 관직, 한 명의 공직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 권력 분립을 실현했는지 살펴보자. 일단 최고 행정 명령권 '임페리움'(Imperium)을 갖는 콘술(집정관·대통령)을 두 명 뽑아 상호 견제하도록 했다. 두 명의 집정관이 합의하지 않으면 임페리움을 행사할 수 없다. 두 명의 집정관은 동등한 권한을 가졌고, 서로의 결정에 거부권 즉 '비토'(Veto)를 행사할 수 있었다.

두 명에게 동등한 권한을 부여한 '동료성(collegiality) 원리'다. 임기도 1년에 불과한 데다 두 명의 합의 없이는 권력 행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대통령 권한 집중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권력 분립 (2) 호민관의 집정관(대통령) 거부권

B.C. 474년 상인, 기술자, 노동자 등의 평민(Plebis)이 귀족과 투쟁 끝에 평민회 결성 성과를 쟁취했다. 평민회에서 선출된 호민관은 집정관을 포함한 다른 공직자의 임페리움을 저지할 거부권를 가졌다. 호민관의 거부권은 평민을 보호하고, 로마 공화정에서 특정 계급이나 특정인의 독주를 막는 유력한 수단이었다.

B.C. 367년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법'으로 평민에게도 집정관 출마의 길이 열렸고, B.C. 287년 '호르텐시우스법'을 통해 호민관이 평민회를 통과시킨 법령도 국법의 효력을 가졌다. 평민 계급에서 유력한 정치인이 배출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들을 기존의 '파트리키'(Patriki) 귀족과 구분되는 신(新)귀족이라는 의미의 '노빌리스'(NOBILIS)라고 불렀다. 영어 '귀족'(Noble)의 어원이다.

◆권력 분립 (3) 집정관(대통령)의 감찰관 통제 불가능

집정관(대통령)은 법무관(Praetor), 재무관(Quaestor), 조영관(Aedile) 등의 업무를 일정 범위에서 간섭할 수 있었지만, 무제한으로 지휘할 수는 없었다. 특히 엄격한 독립성이 요구되는 감찰관(Censor)은 상하 지휘 관계가 아니어서 집정관이 일방적으로 감찰관 업무에 개입할 수 없었다.

카이사르 조각. B.C. 44년 1월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종신 독재정치 체제를 구축했다가 2개월 뒤 B.C. 44년 3월 15일 공화주의자들에게 암살된다. 베를린 알테스 박물관
카이사르 조각. B.C. 44년 1월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종신 독재정치 체제를 구축했다가 2개월 뒤 B.C. 44년 3월 15일 공화주의자들에게 암살된다. 베를린 알테스 박물관

이런 엄격한 로마 공화국의 원칙을 깨고 권력을 한 사람의 집정관에 집중시킨 인물이 B.C. 44년 1월 카이사르다. 그래서 두 달 뒤인 B.C. 44년 3월 15일 오늘날 '토레 아르젠티나 광장' 아래 묻혀 있는 로마 원로원 회의장 폼페이우스 쿠리아(Curia)에서 공화주의자들에게 암살된 거다.

대한민국의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던 헌정 사상 초유의 노골적 수사기관 권력 예속화. 거꾸로 가는 권력 행보의 끝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탄핵하고, 녹취록에서 드러났듯이 김명수 전 대법원장처럼 정치 권력(국회)의 눈치를 보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로 만들어 대통령의 들러리로 세우는 것일까? 상식적인 국민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독재의 끝은 비참하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