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The Play That Goes Wrong)

입력 2026-10-25 06: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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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흠 극작가

조대흠 극작가
조대흠 극작가

대표가 도망가고 얼떨결에 극단 회색탄산의 대표가 된 김영. 갑작스레 극단 대표가 된 것도 모자라 폭탄이 떨어졌다. 지원사업을 통해 받은 연극 지원금 500만원을 연출이 들고 사라진 것. 대관비는 계약금만 나간 상태고, 무대든 소품이든 앞으로 나가야 하는 돈은 산더미다. 거기에 극단 사정을 눈치챈 배우들도 수익금에서 나누기로 한 돈을 먼저 요구한다. 제작비를 구하기 위해 김영은 극단을 떠난 사람들에게 찾아가 돈을 부탁하게 되는데….

한때 고민했던 연극의 시놉시스다. 아마도 몇 년 전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The Play That Goes Wrong)'이라는 연극을 본 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연극은 슬랩스틱 코미디 장르로 공연을 보며 깔깔 웃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걸 보고 애달픈 이야기를 떠올렸을까.

매년 돌아오는 아르코 지원사업 기간이다. 연말은 당해 사업 정산하느라 정신없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년도 지원사업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아르코는 10월부터 공고가 올라오니 아르코 공고를 보면 벌써 내년도 사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이 밀려온다.

창작자에게 지원사업은 단순히 돈을 받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을 현실로 옮길 기회고,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고를 기다린다. 작년에 떨어졌더라도, 올해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기획서를 다시 쓴다.

물론 그 과정이 늘 설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 공고를 자세히 읽고 그 기준에 맞춰 기획 의도와 기대 효과, 세부 일정, 예산 등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작품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설득해야 한다. 작품을 만드는 일과 작품을 설명하는 일은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기획서 10개를 내야 1개가 된다는 우스갯소리는 농담이 아니다. 오히려 기획서가 선정되지 않는 일이 더 익숙하다. 어떤 사람은 예술인은 지원금에 매달리면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별도의 기반이 없는 지역의 작은 극단으로서는 그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시놉시스 속 김영은 사라진 제작비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누군가는 그 책임을 감당해야만 공연이 무대에 오를 수 있다. 무대 위에 올릴 이야기를 고민하는 시간만큼 무대 밖의 일에도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김영의 이야기가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그날을 위해 오늘도 기획서를 쓴다. 아직은 알 수 없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