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대구 미국문화원 폭파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까지 한 피해자들이 사건 발생 43년 만에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23일 박종덕 씨 등 피해자 5명과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은 1983년 9월 22일 대구 삼덕동 미국문화원 앞에서 폭발물이 터져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사건이다.
박종덕·함종호·손호만·안상학 씨와 고 우성수 씨는 용의자로 지목돼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한 뒤 국가보안법·반공법·집시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1984년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10년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를 확인했고, 피해자들은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2019년 박종덕 씨의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는 고문 등에 의해 만들어진 진술을 증거로 쓸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나머지 집시법 위반 부분은 '면소' 판결이 내려졌다. 면소는 무죄와 달리 범죄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법이 폐지됐거나 공소시효가 끝나는 등의 이유로 재판을 끝내는 판결이다. 당시 적용됐던 집시법 조항이 1989년 폐지됐기 때문이다.
이 차이 때문에 1·2심에서는 문제가 생겼다.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박종덕 씨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을 인정했지만, 면소 판결을 받은 나머지 피해자들은 "면소만으로 과거 유죄판결이 불법이었다고 볼 수 없다"며 배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법원은 이번에 이를 뒤집었다.
재심에서 형식상 면소를 받았더라도 불법구금과 고문 등 수사기관의 위법행위가 확인됐고, 해당 법 조항이 폐지되지 않았다면 무죄가 선고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가가 배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 손해배상 청구 시효 역시 과거사위 결정이 내려진 2010년이 아니라 재심 면소 판결이 확정된 2019년부터 계산해야 한다고 봤다. 피해자들이 이듬해 소송을 냈기 때문에 청구권도 살아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번 판결은 재심에서 반드시 '무죄'라는 형식을 받아야만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문과 불법수사로 유죄가 만들어졌고, 면소 사유만 없었다면 무죄가 선고됐을 가능성이 높을 경우, 국가 책임을 따로 따져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