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시작은 차례상 장보기다. 대형마트가 생기기 전만 해도 전통시장은 제수용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대목을 봤다.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친다. 송편을 빚고, 밤을 친다. 명절 당일 부엌은 전쟁터다. 대소가(大小家)를 다니며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음복(飮福)을 하면서 덕담을 나눈다. 따끈따끈한 '명절 민심'이 형성되기도 한다.
과도한 차례상과 접객(接客)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정작 가족이 오붓이 대화할 시간은 부족하다. 갈등의 요소들도 많다. 누가 음식을 장만하고, 누가 설거지를 할 것인가. 본가(시댁)에 먼저 갈 것인가, 처가(친정)에 먼저 갈 것인가. 이러다가 조상을 모시는 날에 산 사람끼리 서운해진다.
명절 풍습(風習)이 달라지고 있다. 차례 대신 가족 모임을 하는 집들이 늘고 있다. 외식을 하고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기도 한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4~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번 추석에 차례나 제사를 지내려는 사람은 30%로 나타났다. 이 응답은 2023년 같은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해 설 때 40%, 지난해 추석과 지난 설에 각각 35%였는데 꾸준히 줄고 있다.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사라지는 걸까.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 풍습도 달라져야 한다. 조상님과 돌아가신 부모님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오랜 시간 허리 굽혀 전을 부치는 일일까. 고물가에 체면치레하느라 자손들이 등골 빠지는 일일까. 그렇지 않을 게다. "너희끼리 사이좋게 잘 살아라." 뭐 이런 소망 아닐까. 성균관도 차례상에 많은 음식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柹)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했다. 차례 음식을 돈 주고 사면 어떠랴. 부모님이 생전에 좋아하셨던 곰탕이나 김치찌개면 어떤가. 조상님이 정말 서운해하실 것은 자식들이 명절에도 만나지 않는 것일 테다. '차례 없는 명절'보다 '사람 없는 명절'이 더 두렵고 서글프다.
'명절 소멸(消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차례가 없어지면 가족이 모이지 않고, 명절은 '긴 연휴'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상국 시인은 "아름다운 풍속은 쉽게 없어지는 게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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