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윤정 칼럼] 대학은 기업에 인재를 공급하기 위한 곳인가

입력 2026-09-15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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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9월 1일 교육부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패키지 지원 대학으로 부산대·전남대·충남대 세 곳을 선정했다. 2027학년도 수시 원서 접수에서 이 세 대학의 지원자는 전년보다 11.6% 늘었고, 부산대는 19% 증가했다. 반면 선정되지 못한 일부 거점국립대는 지원자가 줄었다. 대학 서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정책이 역설적으로 거점국립대 사이에 새로운 서열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책은 두 흐름이 결합해 탄생했다. 하나는 대학 평준화와 서열 해소를 통해 과도한 교육 경쟁을 완화하자는 진보 학계의 오랜 문제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입시 지옥을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보고, 수도권 집중의 병목을 해소하려면 지역에 좋은 대학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김종영 교수의 제안이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과 메가프로젝트 중심의 산업정책이 결합하면서 지금의 정책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부 거점국립대를 선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구체화되면서, 대학 서열을 해소하려던 사업이 오히려 새로운 서열을 만드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필자가 속한 부산대는 이번 사업에 선정됐다. 자원과 사회적 관심이 늘어난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선정 대학의 내부에서 보더라도 우려할 지점이 적지 않다.

첫째, 이 사업은 2030년까지의 한시적 재정사업이다. 사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계약학과와 신설 단과대학이 5년 뒤에도 유지될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과거의 수많은 대학 재정지원사업처럼 정권과 함께 사라지는 일회성 프로젝트가 되지 않으려면 특별법과 안정적 재정, 사회적 합의, 대학 구성원의 장기적 참여가 필요하다.

둘째, 현재의 사업에는 대학을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곳'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게 깔려 있다. 그러나 산업과 결합한 대학 모델은 19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여러 대학 모델 중 하나일 뿐이다.

더구나 지금은 AI 전환으로 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 자체가 급속히 바뀌고 있다. 이런 시대에 대학이 당장 산업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을 공급하는 데 역할을 한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장기적인 과학기술 발전과 문명 전환을 이해하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질문하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산업에 집중 투자할 것인지를 서둘러 정하는 일이 아니라, 급변하는 시대에도 대학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먼저 논의하는 것이다.

셋째는 기초학문의 문제다. 부산대에는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의 다양한 기초학문이 오랜 시간 축적돼 있다. AI가 기능적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는 상황에서 기초학문에 대한 장기 투자 없이 산업 연계 전공에만 집중한다면, 역설적으로 대학은 AI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기능적 인력을 길러내는 곳이 될 수 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특정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는 전략은 위험하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금언은 대학에도 적용된다. 기초학문은 당장의 수익률로 평가하기 어렵지만, 예측하지 못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새로운 질문과 해법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의 토대이다.

더 큰 문제는 선정 대학 내부에서조차 사업의 원칙과 계획이 구성원에게 충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대학 전체의 참여와 헌신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필자가 속한 사회학과 학생들은 공학 중심의 투자가 사회학과 같은 기초학문의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한다. "'서울대 10개'가 시작되면 사회학과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묻는 학생도 있다.

이런 우려를 단순한 기우로 치부하기 어렵다. 대학 본부는 교원 정원, 학생 정원, 성과평가, 예산 배분에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단기간에 성과를 보여주기 어려운 기초학문은 자원 배분에서 밀려나기 쉽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이름 아래 이 정책은 대학 간 서열화뿐 아니라 대학 내부의 학문 간 서열화까지 촉발할 수 있다.

대학의 학문 생태계는 오랜 시간 공들여 빚은 도자기가 가득한 상점과 같다. 그 안에 코끼리가 들어와 휘젓기 시작하면 한번 깨진 것은 되돌리기 어렵다. 사라진 학과와 연구 전통은 복원에 수십 년이 걸리거나 아예 복원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학문 다양성의 파괴는 비가역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을 속도전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실무 인재는 이제 기업 스스로 키우기 시작했다. 팔란티어는 고교 졸업생에게 대학 대신 자사의 4개월 유급 교육과정을 밟도록 하는 '메리토크라시 펠로십'을 운영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과정은 기술뿐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과 비판적 사고도 강조한다.

기업조차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를 직접 길러내는 시대라면, 대학이 기업의 인력양성기관을 자처할 이유는 더욱 줄어든다. 오히려 대학은 진리 탐구와 비판적 사유라는 핵심 기능을 강화하고, 급변하는 세계에서 사회가 방향을 잃지 않도록 지적 중심을 제공해야 한다.

'서울대 10개'가 훗날 도자기 상점에 들어온 코끼리처럼 대학 생태계를 뒤흔든 정책으로 평가받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속도보다 과정과 내용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선정 대학은 사업 실시계획을 구성원에게 공개하고 최종 확정 전에 대학평의원회의 충분한 심의를 거쳐야 한다. 둘째, 정부는 미선정 거점국립대에도 추가 재원을 마련해 이 정책이 새로운 서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좋은 대학을 만들어 수도권 집중의 병목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정부와 선정 대학은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와 보호 방안을 사업계획에 명시해야 한다.

대학이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것은 여러 역할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대학은 현재의 산업이 원하는 사람만을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사회가 필요로 할 질문과 지식을 준비하는 곳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