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김만태 문경예술 대표 "드라마·영화 촬영으로 북적이는 고향 꿈꿔요"

입력 2026-05-20 14: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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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태 문경예술 대표가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내
김만태 문경예술 대표가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내 '왕과 사는 남자' 촬영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올해 초 큰 화제를 모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주요 배경인 광천골 장면은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서 촬영됐다. 해당 장면에 등장하는 보조출연자 20여명은 모두 지역 출신이었다.

경북의 작은 도시 문경에 상업영화에 출연할 보조출연자가 그렇게 많냐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실상은 최근 문경에서 촬영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보조출연자 상당수가 지역민이다. 그 이면엔 보조출연자 단체인 '문경예술'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김만태(51) 대표의 노력이 있었다.

김 대표는 경북 문경이 고향이다. 30년 넘게 국내 드라마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4년 전부터 서울과 문경을 오가며 지역 보조출연자 활성화와 신규 일자리 창출을 이끌고 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문경시 점촌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문경예술 사무실에서 김만태 대표를 만났다.

-연예계에는 어떻게 발을 딛게 됐나.

▶고등학교 시절 가수가 꿈이었다. 고교 졸업 직후였던 1995년, '연예가중계'라는 TV프로그램을 통해 서울재즈아카데미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8개월 정도 보컬과를 다녔다. 학비는 1개월에 100만원 수준으로 무척 비쌌다. 당시 서울에서 주차 아르바이트로 120만원을 벌었는데 월급의 대부분을 학비로 썼다.

비싼 학비보다도 동기들과 대화가 안 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다들 화성학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노래방에서 노래 잘 한다는 얘기만 믿고 입학한 거였으니. 이후 서울예대 실용음악과를 목표로 입시 음악학원을 다녔다. 낙방 후 얼마 뒤 학원 선생님이 포장마차에 데려가 술을 사주며 말씀하셨다. 다른 길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지금 내 말이 기분 나쁠 수 있지만 먼 훗날엔 날 이해할 거라고.

1년 동안 믿고 따랐던 선생님 말씀이었기에 당장 그만뒀다. 그 일은 저를 뒤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제가 꿈 꾼 건 노래하는 사람이 아닌, 그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였다는 걸 느꼈다. 그럼에도 방송 일은 하고 싶었다. 그렇게 떠올린 게 매니저였다. 당시 영화계에서 제작부 일을 하던 친형에게 도움을 요청해 작은 매니지먼트 회사에 입사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김만태 대표가 보조출연자 단체인
김만태 대표가 보조출연자 단체인 '문경예술'을 만들어 운영해온 지난 4년 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작은 회사에서 매니저 일을 시작해 지금의 자리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운이 좋았다. 초기엔 일을 하다 힘이 든다는 핑계로 그만두고 문경에 내려와 있다가 다시 올라가 일을 하는 식으로 몇 년을 보냈다. 20대 후반 무렵, 친형이 저의 이런 모습이 딱해보였는지 최고의 드라마 작가가 될 인물이라며 누군가를 소개시켜 줬다. 그분의 눈에 들면 어떻게든 도와주실 테니 주말마다 찾아가 집 청소라도 하라고 했다. 1개월 정도면 그분 마음을 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1년이 되도록 눈길 한 번 안 주셨다. 모든 걸 정리하고 고향 문경으로 내려가려 했을 때, 운명처럼 그분이 마음을 여셨다.

그리곤 당시 '겨울연가'를 제작해 화제의 중심에 있던 팬엔터테인먼트의 박동아 회장과 드라마 제작을 위해 만나는 자리에 저를 데려가셨다. 그분이 박 회장께 말했다. "저의 계약조건은 얘를 최고의 매니저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그분은 훗날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 '왕가네 식구들'을 쓴 문영남 작가다. 이분과의 만남은 이렇게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팬엔터테인먼트에 입사가 도움이 됐나.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됐다. 제대로 된 매니저 일을 배울 수 있었다. 단기간에 드라마 제작 전반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됐다. 이곳에서 배우 박선영, 고 안재환, 박소현 씨 매니저를 했다.

팬엔터테인먼트 생활을 길지 않았다. 1년 반쯤 일 하고 독립했다. 2004년 무렵 소현 누나 계약이 만료될 때 함께 나와서 7년 정도 매니저로 함께 했다. 문 작가님이 늘 아껴주시고 지켜봐주셨기에 걱정은 없었다. 저 또한 문 작가께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했다.

-지금은 매니지먼트 회사가 아닌, 연예인 에이전트 업무를 하는 회사와 드라마 대본 인쇄·제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200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에선 대형 연예 기획사가 에이전트와 매니지먼트 두 기능을 함께 담당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2010년을 전후해 연예인의 캐스팅 등 영업 협상을 대행하는 에이전트가 생겨났다. 저 또한 15년 전쯤 배우의 캐스팅 등을 지원하는 에이전시 회사로 전환했다.

대본 쪽 일을 하게 된 건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 시절 문득 드라마 대본은 누가 납품할까 하는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수익도 수익이지만, 이 일을 하면 제작할 작품의 배역을 제일 먼저 알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 두 회사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다.

김만태 문경예술 대표가 문경대 평생교육원 엑스트라 양성과정 교육생들과 현장실습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경예술 제공
김만태 문경예술 대표가 문경대 평생교육원 엑스트라 양성과정 교육생들과 현장실습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경예술 제공

-2024년엔 그룹 엑소의 수호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세자가 사라졌다'를 초록뱀미디어와 공동 제작했다.

▶회사가 오래 가려면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팬엔터테인먼트 시절 박동아 회장님이 회의 때 강조했던 것이기도 하다. 배우는 계약 기간이 지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그렇다면 남는 건 콘텐츠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회장님이 '겨울연가'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이 같은 꿈을 품게 됐다.

-서울에서 뿌리를 잘 내린 것 같다. 그럼에도 문경에서 보조출연자 단체를 만들어 지역민을 다양한 작품에 출연시키고 있다. 이유는 뭔가.

▶문경은 국내 최대 규모 사극 촬영장을 보유한 도시다. 조선시대 촬영장인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삼국시대 촬영장인 가은 오픈세트장이 있다. 폐기물 매립장을 오픈세트장으로 탈바꿈한 마성 오픈세트장에선 퓨전 사극 촬영이 이뤄진다. 그밖에 과거 쌍용양회 문경 공장 부지를 리모델링해 만든 문경실내촬영스튜디오도 드라마·영화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매년 평균 200일 정도 촬영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가보진 않았지만 할리우드는 영상 관련 업체가 엄청나게 모여 있다고 한다. 반면 문경은 어떤가. 지난 20여 년 동안 조명·의상·미용 등 관련 산업은 전혀 활성화되지 않았다. 크레인이나 조명, 심지어 보조출연자까지 서울에서 내려온다. 심하게 얘기하면 그동안 서울에서 돈을 다 벌어 간 거다. 게다가 문경시는 세트장 유지보수에다 작품 촬영 유치를 위해 큰 예산을 들여 제작지원을 하고 있지만, '제작지원 문경시'란 자막 나오는 게 전부다.

이런 현실이 늘 안타까웠다. 보조출연자만 놓고 보더라도 지역 참여만 이뤄진다면 일자리 창출에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나아가 관련 산업 활성화의 밑거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22년 9월 보조출연자 단체인 문경예술을 만들어 운영하게 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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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출연한 문경지역 보조출연자들이 장항준 감독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경예술 제공

-문경대 평생교육원에 엑스트라 양성과정을 개설하도록 해 보조출연자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막상 부딪혀보니 제작사 측에서 지역 보조출연자를 쓰는데 대해 불안해하며 기피했다. 보조출연 경험이 문제였던 거다. 결국 문경대 부총장님을 설득해 평생교육원 단기 과정으로 영화 드라마 엑스트라 양성과정을 개설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지금은 지역민 참여가 크게 늘었다. 지난해 '왕과 사는 남자' 촬영 때는 20여명이 보조출연자로 참여했다. 각계의 공감대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문경대와 문경관광공사 등도 촬영 지원 조건으로 '지역민 우선 참여' 목소리를 내며 힘을 보태고 있다. 문경시는 향후 제작 지원 작품에 대해 일정 비율의 지역민 출연 의무화 조례 제정도 논의 중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문경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

▶문경 오미자가 왜 특별하고 유명한가 살펴보니 문경이 지닌 기후와 토양에 답이 있었다. 그렇게 보자면 문경은 국내 최대 규모 촬영장을 지닌 곳이다. 그런 점에서 문경시가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해 좀 더 집중해줬으면 한다. 제가 직접 이룰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문경대에 연기과가 생겼으면 하는 게 바람도 갖고 있다.

부모님이 이곳에 계시고 친구들도 많아 문경을 자주 오간다. 그럴 때면 사람들, 특히 어린이·청소년이 매년 줄고 있다는 것을 크게 실감한다. 국내 최대 규모 촬영장이란 토양 위에서 영화 드라마 산업이 활성화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어린 시절 기억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는 고향 문경의 모습을 보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