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유광준] 세대 동행

입력 2025-05-15 17:30:00 수정 2025-05-15 17:54:02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요즘 젊은 것들은 예의도 근성도 없어서 큰일이야!"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지…"(라떼)로 시작하는 표현을 자주 하는 기성세대들이 어제오늘의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통탄하면서 쏟아내는 푸념이다.

그러면 이내 젊은이들은 "나이가 무슨 벼슬인 줄 안다"고 발끈하며 눈을 흘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일화에 등장하는 핀잔의 대상은 머지않아 핀잔의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어느 시대에나 '젊은이'들은 어설퍼 보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어른들의 끊임없는 걱정에도 대한민국 공동체는 진전돼 왔다.

일제 식민지와 민족상잔의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낸 어르신들은 열정과 낭만을 좇으며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장발 그리고 미니 스커트에 심취한 당대의 '요즘 것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장탄식의 대상이었던 그들이 '한강의 기적'을 만든 베이비붐 세대다.

가난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형님과 누님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번 돈을 학비 삼아 대학에 진학한 586세대들은 "고생하는 부모님 생각해서 딴생각 말고 출세해서 효도하라!"는 맏이의 당부를 뒤로하고 '세상일'에 관심이 많았다.

불러다 "제대로 고생을 안 해 봐서 정의네 민주네 입바른 소리나 하고 있다"고 타박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인 줄만 알았던 이 동생들은 엄혹한 시절 독재 권력에 맞서 민주화를 이끌었다.

자동차, 전자, 조선, 철강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에 올려놓으며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역군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X세대 자녀들을 보면서 다시 한숨을 내쉰다.

부모 덕에 먹고살 만해졌고 사회 분위기도 자유로워졌으니 조금만 근면하면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겠다고 기대했는데 이 녀석들은 놀 궁리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딴따라'에 심취해 부모가 '다리몽둥이 분지른다'고 엄포를 놔도 대중문화에 대한 열정을 내려놓지 않은 철부지가 X세대였다.

김구 선생이 그토록 바랐던 문화 강국의 초석을 다진 이들이 바로 '한류'(韓流·Korean Wave)와 '케이 컬처'(K-Culture)를 이끌고 있는 이 철부지들이다.

X세대가 이제 우리 나이로 쉰이다. 자녀들의 모자람이 더욱 크게 보이는 시기다.

6·3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각 정당의 후보들이 입을 모아 국민 통합이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한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국론 분열의 참상을 국민 모두가 목격했기 때문이다.

특히 세대 간 갈등 양상이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진단이 이어진다.

대한민국의 성장과 번영은 특정 세대가 독점할 수 있는 성과물이 아니다. "이 나라가 어떤 나란데, 이 나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라고 말하면서 누군가에게 가르치듯 훈계해도 되는 세대는 없다.

모두가 저마다의 짐을 감당하며 묵묵히 걸어왔고 쉽지 않은 난관을 돌파해 온 '대한국민'이다. 서로에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을 다 하느라 수고했다고 또 수고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면 어떨까.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문명 발전의 원동력은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의 역사'라고 말했다.

국난 극복의 DNA를 물려받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시대적 과제에 응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실패가 걱정이라면 응전에 필요한 지혜를 빌려주면 되지 않겠나!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도청의 신입 직원들에게 당부한 얘기다.

"나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을 동경하면서 공부하고 일한 사람이지만, 여러분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나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들 아니냐! 믿고 맡길 테니 최선을 다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