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장(계명대 명예교수)
지정학적 위기의 확산으로 글로벌 해상무역 통로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 한국은 무역의존도 84.6%,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운송하는 적극적 해양활용 국가이다. 부존자원의 부족으로 철광석, 석탄, 곡물, 원유, LNG 등 대부분의 자원을 해외에서 조달하고, 수출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해양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생명줄 같은 자원수송로가 막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명약관화하다. 특히 말라카해협과 남중국해는 많은 국가들의 이해가 충돌하는 지역으로 분쟁 발생 시 글로벌 경제와 공급망에 대 혼란을 촉발할 수 있는 핵심 초크포인트(choke point·전략적 요충지)다. 한·중·일 3국은 이 자원수송로를 통해 원유의 75%, 80%, 90%를 각각 수입하고 있다.
말라카해협은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 섬 사이에 위치한 해상요충지로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고 있으며, 매년 9만 여척의 선박이 통항하고 있다. 해군 전략가이자 지정학자인 알프레드 마한은 말라카 해협을 '강대국의 지위를 결정하는 전략적 핵심지역'으로 꼽았다.
중국도 이곳을 중심으로 남중국해와 중동, 아프리카의 주요 무역항을 아우르는 '진주목걸이 전략'을 통해 해양 지배력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은 과거 태국 남부지역을 관통하는 크라 운하(Cra Canal)를 건설하여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연결하고, 말라카해협의 우회로를 확보하려 했으나 경제성 문제와 국제사회의 반대로 좌초되었다.
남중국해는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둘러싸인 광대한 바다로 네 개의 주요 군도로 형성된 분쟁지역이다. 이곳은 전 세계 물동량의 25%가 통과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 수출입 물동량의 68%와 62%가 각각 통과하는 무역통로이자 자원수송로이다. 대만과 필리핀의 바탄 제도 사이에 위치한 바시해협에는 세계 안보와 통신을 담보하는 해저 광통신케이블이 통과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85%를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하며 2014년부터 스프래틀리군도(난사군도)의 7개 암초를 매립하여 인공섬을 만들어 군사기지화하였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인공섬 건설에 대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중국 패소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국내법으로 남중국해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들 지역은 미국 주도로 해양안보질서가 유지되고 있지만 미·중 충돌로 그 현상이 바뀔 수 있다. 미 해군은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2015년부터 남중국해에서 정기적으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치고 있다. 이를 통해 유엔해양법협약에서 인정하는 공해 및 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항행 자유의 원칙을 수호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강한 해군력에 반비례하는 해운·조선력의 약화는 지역 안정을 담보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미군의 작전수행 능력은 해군력 뿐만 아니라 병력 이동과 전쟁 물자를 공급하는 병참 능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대만 문제로 남중국해 인근이 분쟁수역으로 선포될 경우, 한국은 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중국은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두 차례의 무력시위를 단행하며 대만 봉쇄훈련을 하였다. 트럼프 2.0시기를 맞이하여 탈세계화는 심화될 것이고, 중국은 이 기회를 활용하여 주변 해양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대일로'의 추진과정에서 보듯이 중국은 주변 국가들과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경제와 주권 침해 논란을 지속적으로 야기했다. 최근 불거진 서해 한중잠정조치수역(PMZ)내 철재구조물 설치도 중국의 해양영토 확장과 서해 해상수송로의 통제력 확대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생명줄 같은 자원수송로의 보호를 해양안보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해상수송로 보호를 외부의 힘에만 의존하는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도 않다. 세계 4위의 해운국, 6위의 수출국, 5위의 해양력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 해양과 안보전략을 통합적으로 수립·감독할 수 있는 기구의 설치가 필요하다.
미국의 해운·조선산업 재건과 해사인력 양성을 위한 '국가해양전략 미의회 지침서(2024년)'를 참고하여 우리도 '국가 해양전략'의 판을 새롭게 짜야 한다. 시기를 놓이면 미국의 문제가 조만간 우리의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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