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창-윤창희] AI 시대, '모든 국민을 위한 기술'을 다시 묻다

입력 2025-07-03 13:30:00

윤창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AI정책연구팀장

윤창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AI정책연구팀장
윤창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AI정책연구팀장

인공지능(AI)은 이제 대한민국 행정과 공공서비스 전반에 걸쳐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민원 응대, 복지 행정, 행정 자동화, 정책 의사결정까지 AI가 관여하는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으며, 디지털 전환의 효과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적 성과의 이면에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과연 이 모든 혁신이 국민, 특히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디지털 취약계층에게도 체감되고 있을까?

지금 우리는 기술의 속도보다 '국민의 체감 속도'가 더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AI는 전문가나 기술 친화 계층에게는 익숙할 수 있으나 고령층, 장애인, 농어촌 주민, 다문화 가정 등은 여전히 공공 AI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렵고, 어떤 혜택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정보 격차를 넘어 행정 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의 불균형이라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공공 AI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만을 위한 기술이 된다면 그것은 곧 '디지털 불평등'이라는 새로운 사회 갈등을 낳는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바로 '국민 체감형 AI'다. AI는 단지 효율과 비용 절감의 수단이 아니라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전 국민 디지털 역량 강화 종합계획'은 이런 방향에서의 출발점이다. 2027년까지 100만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육을 제공하고, 전국 1800여 곳의 '디지털 배움터'를 통해 고령층과 취약계층 대상 맞춤형 교육을 강화한다. 특히 실습 중심, 사례 기반의 콘텐츠와 '찾아가는 디지털 교육버스'는 현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활용 역량지표'를 통해 국민의 AI 이해도와 활용 수준을 진단하고 있으며, 행정안전부는 디지털플랫폼정부 추진 과정에서 '설명 가능한 AI(XAI)' 원칙을 도입해 민원 시스템에 대한 사전 영향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AI에 대한 인식 격차 해소와 디지털 포용 실현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적 미비점은 존재한다. 복지 대상 선정 등 민감한 결정에 AI가 관여한 경우, 탈락 사유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탈락했는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제도적 권리가 없는 탓이다. 이제는 'AI 설명 청구권'을 입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단순한 결과 통보만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고, 기술 불신이 오히려 행정 불신으로 번질 수 있다.

접근성도 마찬가지다. 시각·청각 장애인, 다문화 가정, 고령층 등 다양한 국민이 AI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음성 안내나 다국어 번역 기능 등 접근 중심의 UI(사용자에게 보이는 시스템 체계)/UX(사용자 경험) 설계 기준을 공공 시스템에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공공웹 접근성 지침'처럼 '공공 AI 접근성 가이드라인'의 제정도 시급하다.

평가 체계도 국민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AI 국민 체감도 평가'를 통해 국민이 직접 공공 AI 서비스의 신뢰성, 접근성, 유용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가 서비스 개선에 반영되도록 제도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민간 AI 시스템이 공공에 도입되기 전 '공공 AI 시민평가단'을 통해 국민 수용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도 도입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의 명확성이다. AI가 결정에 관여했더라도 실질적인 책임 주체가 불분명한 경우가 적지 않다. "AI가 개입한 판단 결과에 대한 최종 책임은 기관장에게 있다"는 원칙을 행정법에 명시하고, AI 판단이 개입된 모든 행정절차에 대해 기록·보관·검증을 의무화해야 한다.

결국 국민 체감형 AI는 단순한 기술 공유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권리'를 보장받는 문제이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의 문제다. 기술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정부는 이 원칙을 바탕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제도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

AI가 아무리 앞서 나가도 국민이 함께 걷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공공의 혁신이라 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행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물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