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김혜령] 작은 학교의 큰 울림

입력 2025-08-24 08:31:49 수정 2025-08-24 14:55:19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작은 학교가 있다. 대구 1호 행복학교이자 아토피 특성화학교로 지정된 곳이다.

아이들은 숲과 바람을 벗 삼아 배우고, 부모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안도했다. 어떤 이는 이 학교를 위해 아예 이사까지 왔다.

그러나 학생 수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교육청은 다시 통폐합 절차를 꺼내 들었다. 재작년 한 차례 폐교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지만, 이번에는 현실이 되고 있다.

그 학교에 내 딸도 다닌다. 매일 숲을 오르내리며 친구들과 뛰어놀고, 작은 학교라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 이름을 다 알고 지내는 풍경이 소중하다.

그런데 내년이면 딸은 먼 길을 돌아 다른 학교에 다녀야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학교를, 아이들이 스스로 지키고 싶어 하는 공간을 이렇게 쉽게 닫아야 하는 걸까.

숫자로 제시되는 행정의 논리 앞에서 학부모들은 속수무책이다. 어떤 부모는 스트레스에 대상포진까지 얻었다.

교육은 본래 효율이나 비용으로만 재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음악에도 '작음'이 있다.

오케스트라의 장엄함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실내악은 그보다 더 섬세한 결을 보여준다. 작은 음표 하나, 쉼표 하나가 곡 전체를 살아 숨 쉬게 하듯이, 작은 학교는 그 자체로 고유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큰 학교가 합창의 통일성을 보여준다면, 작은 학교는 실내악처럼 서로의 소리를 경청하는 배움의 장이다.

저출산 시대에 학교 수가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은 학교의 의미까지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 속에서 배우며, 스스로 학교를 사랑하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작은 학교를 지켜내는 일은 단순히 건물을 유지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배움의 가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숲을 울리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단지 한 학교의 폐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품격이 무너지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