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꿈과 품'] 파란빛과 붉은빛 사이에서

입력 2025-10-09 13: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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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식 제이에스 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의대 명예교수

김준식 제이에스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의대 명예교수
김준식 제이에스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의대 명예교수

퇴근길마다 지나치는 삼성라이온즈 파크는 내게 하루의 끝을 알리는 신호등 같다.삼성라이온즈가 이길 때에는 파란빛으로, 지고 있을 때는 붉은빛으로 변하는 스타디움의 불빛은 도심의 하늘 아래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물들인다. 운동장 안팎의 함성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그 빛이 전하는 '오늘의 표정'이다.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삼성라이온즈 파크로 경기장을 옮긴 후,계명문화대학교 CEO 모임이 스윗박스에서 열려 처음으로 삼성라이온즈 경기를 직접 관람했다.깔끔한 도시락과 맥주, 응원단장의 리드,스크린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함성 속에서 야구장은 거대한 생명체처럼 살아 있었다.

그날은 9회까지 0대 0의 팽팽한 투수전 끝에 10회 초 키움 히어로즈의 러셀이 날린 3점 홈런으로 승부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러나 경기장을 빠져나오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패배의 허무보다 '함께한 즐거움'의 미소가 남아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승리의 환호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결과를 넘어 서로를 응원하는 태도라는 것을.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일 이기고 지는 일을 반복하지만,그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는가가 삶의 색을 결정한다.아우슈비츠의 절망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붙잡았던 빅터 프랭클 박사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어떤 상태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그 상태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는 박탈과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는 아내를 떠올리며,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써 내려갔다.

고통과 시련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의미를 잃지 않는 태도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냈다.올해 나는 야구장에 직접 갈 시간이 거의 없었다.하지만 퇴근길의 불빛은 여전히 내 마음을 멈춰 세운다.어제는 붉은빛이었고, 오늘은 다시 파란빛이 켜졌다.그리고 이제 삼성라이온즈는 4강에 올라 9일부터 포스트시즌을 시작한다.

작년의 아쉬움 위에 쌓인 새로운 도전,그것이 바로 회복의 색이다.불빛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삶도 이렇게 흘러간다.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고,한때의 실패가 내일의 희망으로 이어지는 것이 인생의 리듬이다.진료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종종 삼성라이온즈 야구선수의 유니폼이나 세계 축구 클럽의 셔츠를 입고 온다.

그 옷 하나가 대화의 문을 열어준다."지난 번 삼성라이온즈 야구 경기 어땠니?", "졌어요. 하지만 다음엔 꼭 이길 거예요." 그 말에 담긴 웃음은 언제나 희망의 조각이다. 그 표정 속엔 패배의 두려움보다 도전의 설렘이 먼저 자리한다. 삶은 이기기 위한 경기가 아니다.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아이들이 파란빛과 붉은빛 사이를 건너며 자신의 태도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패배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아이,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아이, 결과보다 과정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길.며칠 후, 다시 파란빛으로 물들 삼성라이온즈 파크를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속삭인다. "삶의 색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빛을 닮은 아이들이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으로 빛나길 바란다.그 빛이야말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