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신문이 내 손에, 세상이 내 눈에". 올해 한국신문협회가 뽑은 '신문의 날' 표어 부문 1등 수상작이다. '신문의 날'(4월 7일)은 구한말 서재필 박사가 1896년 최초의 민간 언론인 독립신문 창간일을 기념해 1957년 제정됐다. 하지만 이날은 당사자인 신문인들조차 변변한 특집이나 기획기사 하나 없이 흘러 보내는 '잊혀진 날'이 돼 가고 있다.
1인 미디어가 범람하고 신문 구독자가 줄면서 이런 모습은 한층 심화하고 있다. 70대 노(老)언론학자들조차 "평생 읽던 종이신문을 끊고 모바일 기기로 뉴스를 접한다"고 말할 정도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전국 성인 남녀 6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2024 언론수용자 조사'를 보면, 종이신문 이용률(9.6%)은 인터넷(93.6%)·TV(91%)·온라인 동영상 플랫폼(69%) 등보다 크게 낮았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종이신문에 대한 신뢰도가 만 19세 이상 모든 연령대에서 5위 안에 들었다'는 구절이다. 이는 사멸(死滅)이 점쳐지는 신문의 앞날을 비추는 청신호이다. 평범하고 질(質) 낮은 콘텐츠를 줄이고 신문이 정선된 고급 콘텐츠 제작에 매진한다면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에서다.
많은 언론학자들은 실제로 "디지털 사회로 진행할수록 진실 확인자(authenticator), 의미 부여자(sense maker), 목격자(bear witness)로서 저널리즘의 가치와 효용이 더 커진다"고 지적한다. 이 세 가지 기능은 소셜미디어(SNS)가 흉내내거나 베낄 수 없는 정통 저널리즘의 본령이다. 고급 저널리즘의 지속가능성을 만천하에 증명하는, 살아있는 전범(典範) 사례도 있다.
1888년 창간 후 2015년 일본경제신문(닛케이)사에 인수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이다. 이 매체는 30쪽 안팎 분량의 신문을 2023년 기준 매일 10만부 남짓 발행하지만, 고품질 콘텐츠를 싣는 일류 글로벌 매체로 공인받고 있다. 구독료는 한국 돈으로 월 5만 5000원, 연간 66만원에 달해 우리나라 신문(평균 월 2만 5000원) 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FT의 더 큰 차별화 요인은 120만명에 달하는 디지털 유료 구독자들이다. 종이신문에 싣지 않는 분석 기사와 심층 정보를 '스탠더드 디지털'(월 4만 9500원), '프리미엄 디지털'(월 7만 5700원)이란 상품을 통해 전세계 유료 구독자에게 제공한다. 디지털 상품은 인쇄·배달·관리비 같은 고정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높은 수익을 낸다. 덕분에 FT는 2023년에 매출 5억 파운드(약 9684억원), 영업이익 3000만 파운드(약 570억원)를 달성하며 흑자 매체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고의 언론인들로 고급 콘텐츠를 만들어 '신문은 소량, 디지털은 다량'이라는 FT의 전략은 한국 신문사들도 벤치마킹할만하다. 세계 최상위 대학 진학률과 많은 최고경영자과정, 직장인 공부 열기, 매년 8만여명의 석·박사학위 신규 취득자 등에서 보듯 한국은 세계적인 지식·학습 강국(强國)이다. 콘텐츠만 좋으면 월 5만~6만원대 구독료를 낼 독자들이 수십 만명은 족히 된다.
관건은 고급 언론을 만들고 이에 헌신하겠다는 역량있는 언론 종사자들과 사주(社主)들이 얼마나 있느냐에 있다. 선정적·흥미 위주 보도가 판치던 세태를 정면으로 거슬러 '존경받는, 진지한 신문' 만들기에 평생을 바친 아돌프 옥스(1858~1935년) 뉴욕타임스(NYT) 재건 창업주 같은 '각성된' 사주와 부장·국장 등을 지낸 뒤에도 다른 곳으로 외도(外道)하지 않고 탁월한 심층분석과 현장 기사를 쓰는 언론인들이 한국에도 꼭 필요하다.
많은 국내 언론사들이 인공지능(AI) 기술 적용, 유튜브, 유료화 같은 디지털 전환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FT·NYT·닛케이 같은 선진 언론사들은 고급 저널리즘이란 토양이 있어야 디지털 전환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좋은 언론인들이 없거나 빈약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디지털 투자는 모래 위에 누각(樓閣)처럼 되기 십상이다.
50대, 60대, 70대로 나이들수록 더 좋은 콘텐츠를 더 많이 생산하고, 더 고급 대우를 받는 언론인들이 많아야, 더욱 우수한 인재들이 언론계에 몰려드는 황금의 선순환이 벌어진다. 월드클래스 언론은 코리아의 추락을 막고 부흥을 이루는 필수 공공재(公共材)이다. 'K 언론'의 꿈을 품은 언론 종사자들부터 더 노력하고 분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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