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사퇴했다. 한 전 대행은 사퇴 이유로 "국가를 위한 최선의 길을 가기 위해,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협치와 협력 정치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의 직무를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대통령 선거 출마를 시사(示唆)한 것이다. 한 전 대행은 지금까지 대선 출마와 관련, '노 코멘트'로 일관( 一貫)했지만, 정치권과 국민들은 그의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로 여겨 왔다.
한 전 대행의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로 여겨졌던 것은 범보수 후보들의 지지율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율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극단적 대립 정치에 국민들이 진저리 치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야가 밤낮 정쟁(政爭)을 일삼고, 상대를 악마화하고, 국민 분노를 부추겨 지지율을 확보하는 소모적 정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전 대행 대안론 등장은 극한 대립 정치가 우리나라 경제·사회 발전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발(發) 통상 전쟁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위협에 현재 기성 정치인들의 역량으로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불안감도 한몫을 했다고 본다.
한 전 대행의 사퇴로 정부는 또다시 대행의 대행이 국정을 책임지는 상황이 됐다. 앞서 한 전 대행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로 이미 87일이나 대행의 대행이 국정을 이끌었던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국정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국가원수이자 국군 통수권자의 임무를 대신하는 한 전 대행의 사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 한 전 대행 본인은 물론이고, 여야 정치권 모두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본다. 야당의 무차별 탄핵과 입법 폭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등 정치권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없었더라면 이런 비정상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한 전 대행은 평생 정통 관료로 국가에 복무(服務)해 온 사람이다. 장관·주미 대사·경제 부총리·국무총리를 두루 역임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가장 뛰어난 관료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정치인들의 이념 편향적이거나 위험한 이미지와 달리 중립적이고 안정적인 이미지, 미국 정계 및 국제 정세에 해박한 지식과 인맥, 풍부한 국정 운영 경험 등도 큰 장점이다.
하지만 관료의 역할과 정치인의 역할은 다르다. 정치인이 국민을 격동(激動)시켜 지지를 얻고, 자신들의 철학대로 국가를 이끌고 간다면, 관료는 주어진 임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한다. 정치인은 필요에 따라 선전 포고도 불사하지만, 관료는 직접 엄중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려진 결정을 수행하는 위치에 있다. 이제 '관료 한덕수'가 아닌 '정치인 한덕수'가 되자면 한 전 대행은 전쟁 결정도 불사할 수 있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곧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통령 출마 선언에서 한 전 대행은 자신이 왜 출마해야 하는지, 대한민국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지, 어떤 희망을 줄 것인지, 윤석열 정부의 과오(過誤)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어떻게 국민 통합을 이룩할 것인지, 경제와 안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국민 앞에 상세히 밝혀야 한다.
한 전 대행의 사퇴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가 약 4주 남짓 국정을 책임져야 한다. 차기 정부 출범까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국정을 이끌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일상적인 국정 운영에 더해 대선 관리라는 막중한 임무까지 더해진 만큼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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