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은 소설가
어릴 때부터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걸 좋아했다. 비 온 뒤 살짝 불어난 강가에서 물풀들의 살랑거리는 춤을 지켜보는 일, 머리까지 올라오는 코스모스 빼곡한 들판을 미로처럼 뚫어 아지트를 건설하는 일, 한겨울 새하얗게 눈 쌓인 뒤꼍에서 할아버지가 묻어놓은 무 배추 구덩이 속을 헤집어 보는 일. 시골에서 나고 자랐던 내 주변에는 온통 궁금하고 재밌는 것투성이여서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심지어 어느 가을날, 동화 속에서 보았던 소년의 모험을 따라 해 보겠다고 비상식량으로 고구마와 땅콩을 싼 보따리를 긴 작대기 끝에 묶고는 어깨에 척 걸쳐 맨 채 골목을 나서기도 했으니.
나의 이런 기웃거림을 알아채는 사람은 잘 없었다. 아이들이 밤낮으로 쏘다니며 놀아도 부모가 요란스레 말리지 않던 시절이었고, 언니와 남동생은 나와는 판이하게 방안에서 책이나 비디오를 보며 노는 걸 더 좋아했으므로 그런 행적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등학교 교실은 나에게 안성맞춤인 감옥이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대는 게 삶의 이유이자 낙이었던 나는 시름시름 앓다가 편도염, 방광염에 위장병까지 걸리고 말았다. 임시방편으로 항생제와 한약을 지어 먹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이가 없어서 잇몸으로 콱 무는 방법은 책이었다. 친구들이 옆에서 수학 공식과 영어 단어를 욀 때 나는 소설책만 읽었다.
시간이 흘러 인생의 한낮에서 오후로 막 방향을 틀었다. 어른이 되었다고 결코 천성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은, 버스를 타고 다니던 첫 직장에 기어코 걸어가려고 두 시간 일찍 나서던 때부터였다. 버스 노선을 따라 걷다 보면 노파들이 줄줄이 앉아서 깔아놓은 바구니에 푸성귀가 소복이 담겨 있었다. 시금치에서 방풍나물로, 참비름에서 고들빼기로 스리슬쩍 넘어가는 바구니 속의 풀들을 보는 일이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때로는 구부러지다 못해 거의 잘려 나간 보도블록 비둘기들의 발가락에 우뚝 멈추기도 했고, 아는 척 한번 해줬다고 한사코 따라오는 길고양이에게 소시지를 사 먹이다가 지각하기도 했다.
규칙적이지 않은 길들을 넋 놓고 걷다 보면 자연히 크고 작은 변수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개중, 넘어지거나 다치는 일은 좀 난감했다. 작년에도 자주 기웃거리던 뒷산 언덕의 산초나무 잎을 뜯으려다가 발목 인대를 다치는 바람에 몇 개월 동안 고생했다. 기웃거릴 수 없어서 아팠던 어린 시절이나, 맘껏 기웃거릴 수 있지만 오후로 접어든 나의 몸은 여전히 고달프다.
한낱 방황이라 치부한다 해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이 기웃거림이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는 걸. 직업병처럼 소설의 소재를 만들어오는 유익하고 깨알 같은 재미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여전히 기웃거릴 나의 오후가 조금은 기대된다.
댓글 많은 뉴스
'尹파면' 선고 후 퇴임한 문형배 "헌재 결정 존중해야"
'퇴임 D-1' 문형배 "관용과 자제 없이 민주주의 발전 못해" 특강
"조직 날리겠다" 文정부, 102차례 집값 통계 왜곡 드러나
헌재재판관 지명 위헌 논란…한덕수 대행 역풍 맞나
한덕수 돌풍, '어게인 노무현'?…영남이 선택한 호남 후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