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무대에서 사상 처음 벌인 한·일 간 표 대결에서 대패(大敗)를 기록했다. 특히 대통령실의 승인에 따라 벌어진 일인 탓에 향후 잇따른 외교 대참사의 예고편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진다. 애초 '군함도'(일본명 하시마) 문제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은 확실히 우리에게 있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 동원의 흔적인 군함도 탄광을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 동원의 역사도 언급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10년째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은 일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7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47차 파리 회의 투표에서 전체 회원국 21개 중 한국 입장을 지지한 나라는 3국뿐이고, 7국은 일본 입장에 찬성했으며 나머지는 기권(8개국)·무효(3개국)로 처리됐다. 한국 측이 유네스코 회의에서 전례 없는 '표' 대결을 주장했던 것을 감안하면 외교적 대참사(大慘事)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측은 '군함도 문제를 정식 의제로 채택하자'는 입장이었고, 일본 측은 '한·일 양국 간 대화와 합의를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이었다. 당초 군함도 문제는 정식 의제가 아닌 잠정 의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본다면 '제3국'은 누구를 지지할지 어렵지 않게 추론(推論)할 수 있다. 게다가 국가 간 갈등이 얽힌 유산에 대해 한쪽 편을 드는 것을 꺼리는 국제사회의 경향과, 일본의 유네스코 분담금(分擔金)이 한국의 3배나 되고, 그만큼 로비력이 크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결과는 뻔히 보인다. 한국이 이와 관련해 사전에 치밀한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좁은 단세포적 생각으로 "내가 옳다"면서 국제 무대에서 무턱대고 '표 대결 하자'고 나섰으니, 일본을 비롯한 다른 회원국(會員國)들이 속으로 비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외교에 대한 기초적 상식이 '1'도 없는 대한민국 정부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역사의 아픈 흔적인 군함도 이슈가 한국 외교의 비참(悲慘)한 수준을 보여 주는 망신살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한심한 외교가 계속된다면 한·미 관세 협상, 원전 수주, 방산 수출 등 국가의 생존과 번영이 걸린 과업들이 대폭망하는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
sukmin@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진숙·강선우 감싼 민주당 원내수석…"전혀 문제 없다"
"꾀병 아니었다…저혈압·호흡곤란" 김건희 여사, '휠체어 퇴원' 이유는
[사설] 민주당 '내란특별법' 발의, 이 대통령의 '협치'는 빈말이었나
[홍석준 칼럼] 우물안 개구리가 나라를 흔든다
전국 법학교수들 "조국 일가는 희생양"…李대통령에 광복절 특별사면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