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인간은 누구나 안락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그래서 사상가와 문학가는 그러한 염원에 대응하여 이상향(理想鄕)을 만들어냈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맹자(孟子)는 지금으로부터 2천350여 년 전에 이상적 정치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였으니, 그 요체는 백성이 생업에 안정되게 종사하도록 정치를 한다면, 50세 이상인 자는 비단옷을 입어 추위에 떨지 않고, 70세 이상인 자는 고기를 먹어 배고프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쉰 살이 넘으면 비단옷을 입어야 비로소 춥지 않고, 일흔 살이 넘으면 고기를 먹어야 비로소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에 고령자에게 그것을 우선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로부터 1천80여 년이 지난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에 "일흔까지 산 사람은 예부터 드물다네"라고 하였으니,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에는 대다수가 평생 고기 맛도 모르고 살다 죽었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상향'의 유의어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이 말은 동진(東晉) 시기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유래했다. 무릉에 사는 한 어부가 계곡을 따라가다가 복사꽃 숲을 지나 작은 동굴을 발견하였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 보니, 그 안에는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안락해 보였다. 그들은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온 사람들로, 손님을 맞아들여 술상을 차리고 닭을 잡아 대접하였다. 어부가 돌아온 뒤로 다시 그곳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맹자로부터 약 750년이 지난 시기의 '이상향'이란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삶' 정도였다.
국어사전에 '이상향'을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라고 정의하면서 그 유사어로 '도원경'(桃源境)을 제시하고 있으니, '도원경'이란 '무릉도원'을 이른다. 도연명은 문학가이기에 이상향을 맹자보다 아름답게 묘사하였지만, 그 역시 학정(虐政) 없는 세상에서 배곯지 않고 인정을 베풀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 이처럼 '무릉도원'은 사전적 풀이처럼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환상적 세상이 아니건만, 그것은 지금도 완전한 실현이 요원(遙遠)하다.
도연명으로부터 다시 770여 년이 지나서 송나라의 비곤(費袞)이 지은 '양계만지'(梁谿漫志)에서 당시 사람들의 이상향을 볼 수 있다.
어떤 가난한 선비가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밤마다 향을 피우며 하늘에 소원을 빌었는데, 어느 날 홀연히 신이 나타나 물었다.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선비가 대답하였다.
"다만 한평생 입고 먹을 것이 이럭저럭 넉넉하고, 산간이나 물가에서 노닐면서 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신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은 신선의 즐거움인데, 네가 어떻게 그것을 얻겠는가?"
선비의 소원은 엄청난 부귀 명예나 쾌락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평생 넉넉히 입고 자연에서 소요하는 삶이었다. 그런데 신은 그의 바람은 신선의 즐거움이지 인간이 감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일갈하였다.
세상 한편에는 끝 모를 욕망을 추구하는 일군의 인간이 있지만, 대다수가 염원하는 이상향은 이럭저럭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는 것이다. 무릉도원 속 세상은 16세기 영국의 토마스 모어가 만든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의미의 '유토피아'(Utopia)와 달리 갈 수 있고 도달해야만 하는 지향점이다. 도달할 수 있는 무릉도원이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와 유의어가 되지 않기를 추위의 문턱에서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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