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 "남자 교사는 로또 당첨"…'여초(女超) 현상' 심화되는 교직 사회

입력 2024-10-16 15:40:14 수정 2024-10-16 20:09:40

전국 공립 초중고 여교사 비율 20년새 13.5p 급증
특정 성별 교사 쏠림 학생 성장·발달에 부정적 지적
월급·복지 등 처우 개선 통해 남교사 지원자 늘려야

서이초 교사 사망 1주기를 3일 앞둔 15일 오전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추모 메시지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서이초 교사 사망 1주기를 3일 앞둔 15일 오전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추모 메시지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교직 사회는 과거부터 다른 직군에 비해 여성의 비율이 다소 높았지만, 최근 들어 교단의 '여초(女超) 현상'은 더욱 심화되는 분위기다. 올해는 서울 지역 공립 초등학교 교사 합격자 216명 중 193명(89.4%)이 여성이 싹쓸이 하는 등 10명 중 9명이 여자였다. 남자 교사 비중이 낮아지며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편향된 교육 환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교육계에서도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인 만큼 균형 있는 교육 환경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단의 여초 현상 꾸준히 심화

"저희 아들은 초등학교 6년 내내 여자 담임 선생님이었어요. 학부모들 사이에서 '남자 교사를 만나면 로또 당첨'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와요"

이는 아동·청소년 자녀를 둔 일부 학부모들에게서 나오는 농담 섞인 푸념이다. 학교에서 남자 교사들을 만나는 일이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의미다. 여교사 비율의 증가 추세는 통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전국 공립 초·중·고 여자 교사 비율은 ▷2004년 57.1% ▷2009년 62.5% ▷2014년 65.4% ▷2019년 68.1 ▷2024년 70.6%로 20년 새 13.5포인트(p) 증가했다.

대구지역도 ▷2004년 58.9%% ▷2009년 64.2% ▷2014년 66.4% ▷2019년 68.6% ▷2024년 70.6%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여초 현상'은 초등학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전국 공립 초등학교 여자 교사 비율은 2005년(71.0%) 이미 70%대를 넘어섰고 최근에는 80%대에 육박했다. 2022년 기준 초·중·고에서 교장, 교감을 제외하고 남교사가 한 명도 없는 학교도 전국 107곳에 달한다.

최근 신규 임용 교사 추세를 보면 지역에서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지역 공립 초등학교 여자 교사 신규 임용 비율이 ▷2020년 80.2% ▷2022년 87.3% ▷2024년 88.4%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학부모 이모(43) 씨는 "아이가 남자 선생님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남자 선생님 자체를 낯설어하고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다"며 "학교에 남자 교사들의 수가 좀 더 늘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지난 8월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교실혁명 콘퍼런스'에서 교사들이 AI 디지털교과서 시제품(프로토타입)을 체험해 보고 있다. 김영경 기자

◆교사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어려움

특정 성별 교사 쏠림은 학생들이 다양한 교육 경험을 쌓는데 부정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사의 성별 다양성은 학생들에게 보다 넓은 범위의 사회적 간접 경험을 제공하고, 역할·행동 양식을 습득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유백산 광주교대 교수팀이 발표한 '학교 교사 성비는 초등학생의 교육적 성취에 영향을 끼치는가'란 논문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사 성비가 학생들의 교육적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 성비가 국어·수학 등 인지적 부분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남학생의 경우 여자 교사 비율이 높은 학교에 재학할 때 '진로 성숙도'와 '자기 통제력'면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진로 성숙도'는 직업의 종류를 파악하고 자신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으로 측정한다. 남학생의 진로 성숙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역할 모델(롤 모델)이 부족해 벌어지는 현상으로 보인다.

신현재 대구아동청소년심리발달센터 부원장은 "아동·청소년의 주요 과업은 건강한 성인기를 맞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며 "학교에서 남녀 교사를 두루 만나 소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을 기르고 다양한 경험을 확장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초등학생 두 아들을 둔 학부모 김모(40) 씨는 "큰 아이는 남녀 교사를 다양하게 겪어 봤고 작은 아이는 여자 교사만 겪어 봤다"며 "누가 좋고 나쁘다를 떠나 교사 성별에 따라 문제 해결 방식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남녀 교사가 가진 강점을 골고루 보고 배우며 자라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한편 '여초 현상'은 교무부장, 생활지도부장 등 상대적으로 힘든 보직을 남자 교사가 전담하는 새로운 교내 문화를 만들어 냈다. 대구 지역 7년 차 남자 교사 김모(34) 씨는 "여자 교사가 교무부장, 생활부장을 하는 경우가 과거보다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아직 남성들이 해당 업무를 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며 "여자 교사들은 숫자가 많아 돌아가며 안배할 수 있지만 남자 교사들은 소수다 보니 대부분이 꺼리는 업무를 전담하게 된다"고 했다.

◆남교사 늘릴 수 있는 요인 필요

고질적인 남교사 부족 현상에 '남성 임용 할당제'나 '양성평등채용목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공무원 채용에서 한쪽 성(性)이 70%를 넘지 못하도록 '양성평등채용목표제'를 도입한 것처럼 교사 성비를 인위적으로 조정해 남성 교사의 숫자를 늘리자는 요구이다.

하지만 이같은 제도가 시행되기에는 '여성 역차별'이란 사회적 반발이 크다. 현재 대부분의 교대에서 남성 입학생 비율을 25~40%로 정해 이미 대입에서 할당제가 적용되는데 임용 과정에서 또 할당제가 적용되면 '이중 할당제'가 돼 버리기 때문이다.

이보미 대구교사노조 위원장은 "교사 임용시험에서 인위적으로 성비를 조정할 경우 모든 지원자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공정성에 위배될 수 있다"며 "할당제로 인해 시험 합격점이 낮아지며 교직 자체에 대한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제도 보다는 교사들의 처우 개선을 통해 남성 교사 지원자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경식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에 비교해 교사들의 처우는 그대로인데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 등 새로운 정책으로 업무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교직으로 인재들을 유입하기 위해서는 월급 인상, 인센티브 제공, 우수한 복리 후생 등 눈에 띄는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구 지역 한 중학교 교장은 "과거에는 남자 교사들도 사명감을 가지고 많이 왔는데 교권 침해 문제가 심화되며 교사라는 직업의 매력도가 떨어졌다"며 "교권 보호 제도 강화를 통해 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교사의 성비 문제에 앞서 교육의 본질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균섭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 여중·여고에 남자 교사들이 많았는데 당시에는 별다른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교사 성별을 다양하게 노출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남녀 성역할을 고정하는 사회적 편견일 수도 있다"며 "교육자로서의 품성과 자질을 꼼꼼하게 가려내 교사 임무를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