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8월 1일, 세계은행(WB)은 '중진국의 함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성장의 슈퍼스타'로 지목했다. 개발도상국이 고소득 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현상을 '중진국의 함정'이라고 하는데 이를 극복한 대표적 국가가 우리라는 것이다.
WB가 주목한 '성장의 슈퍼스타'는 공짜가 아니었다. 자식들에게는 결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공유한 리더와 국민 희생의 산물이었다. 좋은 일이지만 조상 덕에 살 만해진 못난 후손들의 모습이 겹쳐 씁쓸하기도 하다. WB의 칭찬은 고맙지만 영원한 '성장의 슈퍼스타'는 없다. 차제에 2050년의 대한민국을 미리 가 보자.
고령화의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1위다. 이미 20%를 넘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2050년 38.2%에 이르러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것이다. 2010년대 4.21%였던 잠재성장률은 2040년대에 0.74%로 급감할 것이고 국민연금으로는 소비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노인들은 정치적 세력화를 통해 정부지출의 증대를 압박할 것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져 간병을 비롯한 노인 건강을 위한 지출은 급격히 증가한다. 반면 저출생으로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하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도 한계에 이르러 정치적 결단이 없으면 국가부도 사태를 맞을 것이다.
출생 지원만으로 국가 소멸의 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니 적극적 이민정책이 뒤따를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생하는 문화의 용광로를 만들지 못하면 인종 간 갈등과 반목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하고 미래를 선도할 창의적 인재 육성을 위한 혁신적 교육개혁이 필요한데, 대입 위주의 교육과 과도한 사교육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과도한 평등성을 선호하는 국민성은 MZ세대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불공정을 참지 못하는 MZ세대는 상속·증여세가 과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줄이자는 것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이미 시작됐지만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기업 상속이 어려워진 많은 기업인의 탈한국이 가속화될 것이고, AI를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일부 특화된 전문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자리가 사라져 저소득층의 재분배 요구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자국 우선주의는 더욱 강해져 대기업들도 수출 시장 중심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어 국내 경제는 더욱 위험에 처할 것이다. 기업의 이탈은 구조적 세수 부족을 가져와 적자 재정이 일상화되고 국가부채는 빠른 속도로 증가해 역시 국가부도의 위험이 증가할 것이다.
국제정치도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다. 냉전 이후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세력의 대결장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변화로 인한 원전 건설 붐도 우리 경제에 큰 기회가 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호재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이익이 많은 분야에 다른 나라 기업들도 다투어 진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 체제의 변동 가능성으로 유사시 대륙 대 해양 세력의 충돌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정치인데 그동안 4류였던 정치는 이제 5류, 6류로 전락했다. 1류 기업과 2류 국민의 노력으로 지금 이만큼이나마 유지하고 있지만, 무한 경쟁시대에 부담만 지우는 나라에 기업들이 계속 남아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지금 정치는 불확실한 미래를 점검하고 적극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현실은 어떤가. 시정잡배만도 못한 유치한 언행에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젊은 시절 한때 한 민주화운동을 평생 우려먹는 사람들, 특정인의 사면 복권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당 대표와 대통령 등.
도대체 정치는 언제 철이 들 것인가. 이런 정치인들로 가득 찬 대한민국이 계속 '성장의 슈퍼스타'로 남아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불의요, 불공정 아닌가. 작금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단언컨대 2050년, 우리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베트남에 일하러 가는 참담함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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