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내년은 지방자치 부활 30년

입력 2024-07-30 12:34:40 수정 2024-07-30 18:19:03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내년이면 지방자치가 전면 부활한 지 30년이 된다. 5·16 군사 쿠데타로 중단되었던 지방자치가 민주화의 대장정 과정에서 다시 살아났다. 지방자치의 부활은 힘든 투쟁의 결과였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졌으나 지방자치는 그로부터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발걸음을 내디뎠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고 공정한 선거가 정기적으로 실시되었음에도 중앙집권체제의 권력은 좀처럼 지방으로 나누어지지 않았다. 민주화 지도자들의 목숨을 건 단식 등 결연한 싸움 끝에 지방분권과 자치가 명목으로나마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다시 비장한 마음으로 투쟁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지방자치는 형식적, 절차적 수준에서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실질적 자치의 발전, 혹은 자치의 심화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체제는 여전히 공고하고 그 권력이 놓인 자리에 돈과 사람과 문화와 기회가 동심원을 이루며 모이고 있다.

권력의 집중과 자원의 집적이 겹치며 이른바 '서울공화국'이 더욱 공고해지는 추세다. 자치분권의 현실은 안타깝다. 지역은 자기 비전을 만들지 못하고 중앙 권력의 관심만 따라다니는 '동네 축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 지역 소멸은 이미 오래된 우리의 미래다.

우리는 마음을 다잡아 중앙집권체제와 싸움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방이 더 많은 권한, 더 큰 자원을 확보해야 하고 지금보다 훨씬 더 분명한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 정치인들이 우리 지역을 보수의 성지입네 어쩌고 하며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걸 믿다가 마음을 다친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자치분권은 그들의 자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힘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지방이 자신을 성찰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방 사회 내부에서 상대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견제받지 않는 자치단체장, 다양한 주민의 가치와 이익을 대변하고 자치단체장을 견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지방의회, 공동체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데 힘이 미치지 못하는 약한 시민사회, 이런 모습이 달라지지 않는 한 지방자치는 허울일 뿐이라 하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보자. 자치단체장은 중앙 권력과 견주어 보면 권한이 쥐꼬리 같다지만 지역사회 내부에서는 권력 서열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그가 '군림'하더라도 대책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의회는 지역주의 투표의 결과로 다양성이 없고 자치단체장과 정치적 동종 교배의 상황인지라 견제할 의지도 능력도 보이지 않는다.

지방의회는 자치단체장의 결정을 추인하는 고무도장, 혹은 허수아비라고 한다. 시민사회도 다르지 않다. 수도권 집중으로 위축 일로에 있는 시장, 언론, 학교는 자치단체의 자원 배분에 기대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에 자치단체의 뜻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지방 정치의 틀을 제대로 짜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방 정치가 중앙 정치에 종속되지 않고 자율성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중앙 정치인들이 지방 정치인들을 수직적 관계에 있는 수하로 여기는 한 지방 정치는 발전할 수 없다.

정당 공천을 아예 배제하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민주화하여 지방 정치의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와 문재인이 공통 공약으로 약속했던 '기초자치 정당 공천 폐지'가 우리 지역에서도 박수갈채를 받았던 건 지방 정치의 자율성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지방선거 제도를 바꾸어서 지방의회가 명실상부 주민의 다양한 견해를 반영하는 대표기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과 같은 선거구제를 유지하는 한 대구와 광주는 데칼코마니처럼 정치적 다양성과 역동성을 잃어버린 잿빛 도시가 될 것이다.

기초의원 선거는 중대선거구제의 취지를 확실하게 유지해야 하고 광역의원 선거는 중대선거구제를 하든지 비례대표로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지방의회가 활발해지면 약한 시민사회도 활력을 회복할 것이다. 지방자치 부활 30년을 앞두고 그간의 실험을 성찰하는 큰 기획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