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친구이자 모발이식 세계적 권위자 김정철 교수를 보내며

입력 2024-07-04 14:30:00 수정 2024-07-04 18:39:42

3년전 경북대병원 근무 동기교수들과 경주 남산에서. 앞줄 맨 왼쪽이 필자인 이재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원장 뒷편으로 친구인 김정철 교수. 이재태 원장 제공
3년전 경북대병원 근무 동기교수들과 경주 남산에서. 앞줄 맨 왼쪽이 필자인 이재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원장 뒷편으로 친구인 김정철 교수. 이재태 원장 제공

이 황망함!!!

대학동기이자 친구인 김정철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장이 올해 초에 진행된 암으로 진단되었으나, 이후 항암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5개월 전 처음 전화 통화했을 때, 친구는 '어쩌겠노?'라며 담담하게 반응했다. 지난 주 교실 동문회에서 마련한 친구의 퇴임식도 약식으로 조기에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이 많이 심각함을 알았다.

지난 주 대구에 내려와 꼭 병문안을 하려 했다. 친구를 조금이라도 응원하고, 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동기인 신부님께 같이 가 주실 수 있을지 문의하고, 토요일에는 진료하여야 하는 개원 의사인 친구의 일정에 맞추려 했다. 결국 신부님은 주일 교중미사 일정으로 다음 주 중에 가겠다고 하셔서 지난 6월의 마지막 날인 30일 일요일 아침 일찍 친구와 병실로 향했다.

친구가 입원했다는 병실에 다가가니 문이 개방되어 있고, 청소 요원이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예감이 불길했다. 오늘 새벽 2시에 저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단다. 병실을 정리하던 아주머니께 문의하니, '좋은 분이시니, 좋은 곳에 가셨을 겁니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김정철 교수는 3~4일 전부터 의식이 혼미해졌고, 이 장대 빗속에 기약없는 먼 길을 떠났다. 친구와 둘이서 한참을 망연자실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이자 50년 이상 친구인 김정철 교수가 그렇게 우리곁을 떠났다. 57년생이나, 시골살던 할아버지께서 면사무소의 출생 신고를 사촌들 것을 한 번에 모아 하는 바람에 2년이나 늦었다. 2년 후배들과 같이 오는 8월 정년 퇴임 예정이었으나, 그 알량한 선배 체면 세운다고 마지막 두 달을 참지 못하고 6월 마지막 날에 정든 학교와 병원을 먼저 떠났다.

어려운 집안에서 자랐으나, 똑똑하였고 학문적 열정도 대단하여 의대졸업생 모두가 기피하는 생화학/면역학 기초의학을 전공하였다. 자신의 다리에 모발을 이식해 20년간 유지하며 모발 이식의 효과를 검증하며 연구를 지속했다.워낙 영민하였기에 전공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모발의 생화학적 및 생물학적 생태를 연구하고 특히 모낭군 모발이식법을 고안한 세계적 모발이식전문가였고, 수술의 대중화에도 힘써 전대협(전국대머리협회)회원들에겐 수령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반세기 이상의 삶, 또 의대 졸업 후 40년 이상을 모교에서 같이 생활하였으니, 지난 세월 그와 함께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45년 전 감염내과 수업 첫 시간에 교수님이 페니실린에 대해 얘기하시며 이 약이 어떻게 세균을 잡고 또 저항성이 생기는지는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며, 페니실린 구조를 아는 사람 있느냐고 하셨다. 김정철학생이 손을 들고 나가서 칠판에 페니실린 구조를 쓰-윽 그렸다.

교수님은 설마 알라고?하며 물었었고.. 우리는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다. 나도 '와..'하며 속으로는 그에게 기가 좀 죽었었다.

'등불(영사운드)' '분홍 빛 립스틱(임주리)' '챔피언(윤도현)'.. 노래방에서 친구가 이 노래를 즐겨 부르던 모습이 나의 뇌리를 스친다. 이제 아픔없는 그곳에서 또 다시 그 노래를 부르며 우릴 기다려주게.

자네가 친구여서 행복했고, 또 동료여서 고마웠다.

이재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