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문학제 참가단, 22일 도쿄 상재사 찾아 참배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 건국훈장 애족장 받아
안동출신독립운동가 김지섭·권오설 등 변론 맡기도
"일 평생 거대한 불의와 맞서 싸운 용기 기억할 것"
일본 도쿄 '육사 문학제' 참가단이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힌 조선 청년들을 무료로 변호해준 사람, 일본 제국주의 폭압을 비판한 일본인, '조선 민중의 벗, 일본의 양심' 후세 다쓰지(布施辰治)가 잠들어 있는 조자이지(常在寺)를 찾았다.
이육사추모사업회 회원과 육사 문학제 강연자 등 참가단 20여 명은 22일 도쿄 조자이지 경내 공동묘지 한편에 '布施一家之墓'(후세 일가의 묘)라 쓰인 후세 다쓰지 변호사 가족 묘비에 참배했다.
이들은 이날 "일 평생을 거대한 불의와 맞서 싸우신 용기를 기억한다. 조선 독립과 일본 강제점령의 부당함을 외쳤고,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때는 조선인의 편에 섰던 의로움에 경의를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지금도 혐한, 우익 세력으로부터 묘비가 훼손당하는 후세 다쓰지 변호사는 2004년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그는 1919년 2월 8일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독립을 선언한 재일 한국 유학생 변호를 맡았고, 1923년 의열단원 김시현 등이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관공서 폭파를 계획하다 체포되자 직접 서울에 와서 변론을 맡기도 했다.
1924년에는 안동 풍산 출신 독립운동가 김지섭이 의열단원으로 일본 왕궁의 니쥬바시(二重橋)에 폭탄을 던진 '이중교 투탄의거' 사건으로 체포됐을 때 변론을 맡아 '폭탄이 불발했으니 불능범'이라는 요지로 무죄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또 1926년 일왕과 왕족 폭살을 기획한 혐의로 체포된 문경 출신 박열과 아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의 변론을 맡았으며, 안동인으로 1927년 조선공산당 활동으로 체포된 권오설 등이 일본 경찰의 고문 만행을 폭로하고 고소할 때 법률 업무를 도와주기도 했다.

후세 다쓰지 변호사는 조선공산당 사건 변론 전 일본에서 한 강연에서 "이 사건 변호는 단순한 형사사건이나 재판사건의 변호가 아니다. 총독 정치의 폭압에 반항하지 않을 수 없는 조선 동포 전체의 사건"이라며 "피고들은 폭압 정치에 반항하는 조선 동포의 대표자인 최전선의 투사가 적의 포로가 된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의 합병은 어떤 미사여구를 치장하더라도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침략이라 생각한다"고 밝혔으며, 1911년 '조선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로 세상에 3·1 운동 소식을 알렸고, 이 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후세 다쓰이 변호사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두 번의 구속과 세 차례 변호사 자격 정지를 당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조선의 숨은 조력자로 활동했다. 그가 1953년 9월 13일 세상을 떠나고 열흘이 지난 24일 조선 유학생들이 독립을 선언했던 히비야 공원에서 고별식을 열고 그를 추모했을 정도.
손병희 이육사문학관장은 "후세 다쓰지 변호사는 조선인보다 조선사람을 더 사랑했던 인물이다.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라는 그의 말에서 양심적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고 했다.

일본 도쿄에서 엄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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