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경 변호사
현상세계는 모두 유한하고 무상하다. 만물은 모두 알지 못할 곳에서 와서 알지 못할 곳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짧은 한 세상을 살다 가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누구인지는 가을이 오는 이 길목에서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알지 못할 존재에서 떨어져 나온 알지 못할 존재이다. 나의 참다운 실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여기 이 순간에 고요히 존재할 필요가 있다. 알지 못할 존재는 우리의 경험적, 지성적 지식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무한하고 영원한 실재다. 무한하고 영원한 것은 유한한 시간 속에서 유한한 지식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여기 이 순간만이 무한함과 영원함에 연결되어 있다. 여기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을 때 비로소 알지 못할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소유하려는 마음, 이기적인 마음, 인정받으려는 욕구, 미워하고 질투하는 마음과 시시비비를 구별하려는 마음, 잡다한 망상 및 경험적 지식을 벗어난 곳에 알지 못할 존재가 나타난다. 우리가 인식으로 아는 존재와 실재적 존재는 다르다. 인식을 넘어선 곳에 실재적 존재가 있다. 우리가 붙인 이름과 명칭은 실재적 존재 그 자체가 아니다.
알지 못할 실재적 존재를 만나기 위한 수행 방법에는 명상과 묵상이 있다. 명상(瞑想)은 눈감을 명(瞑), 생각 상(想)이다. 사전적 의미는 눈감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묵상(默想)은 묵묵할 묵(黙), 생각 상(想)이다. 사전적 의미는 묵묵히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거꾸로 명상은 생각을 눈감는 것이요 묵상은 생각을 침묵하는 것이라 풀이할 수 있다. 명상이나 묵상이나 모두 생각을 멈추고 침묵하는 것이다. 생각을 비우고 고요히 여기 이 순간에 집중하여 존재하고 있을 때 알지 못할 존재가 나타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명상은 생각을 비우는 것이고 묵상은 생각을 채우는 것이므로 명상과 묵상은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 명상은 '나 자신'을 보고 내면에 집중하여 침잠하는 것인 데 반하여 묵상은 '나 자신'을 벗어나 밖을 향한다고 한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읊조리며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종이가 아니라 마음에 새기는 것이 묵상이라고 한다. 묵상은 성경 읽기, 성경 암송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에 반하여 명상은 그냥 자신이 되는 것, 중심에 머무는 것, 모든 움직임이 멈춘 것이라 한다. 명상 속에서는 완전히 참나가 되어 어떤 흔들림도 없고 마음도 없으며 자신만이 절대 순수로 존재한다고 한다.
명상과 묵상은 알지 못할 존재를 만나기 위한 수행의 한 방법이요, 진리로 가는 구도의 길이다. 진리는 하나요 진리로 가는 길은 수천만 갈랫길이다. 알지 못할 존재를 하나님, 여호와, 알라, 부처님, 도(道,) 이(理), 이데아, 그 무엇으로 부르든 이름이나 명칭이 실재는 아니다. 이름이나 현상세계에 보이는 것을 숭배하는 것은 유한한 그림자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우상은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다. 종교는 삶을 벗어난 어떤 것이 아니고 삶이 곧 종교다.
명상과 묵상이라는 수행과 구도를 통하여 여기 이 순간에 존재할 때 우리는 영원한 실재와 하나가 된다. 실재적 존재와 하나가 될 때 삶은 기쁨이요 떨림이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다. 실재적 존재와 분리되고 소외될 때 우리는 고통과 불안 속에서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헤매게 된다. 영원한 실재는 진리요 생명이요 사랑이므로 우리는 사랑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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