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폐지 줍는 노인들 온열질환 비상...폐지 가격 하락 이중고까지

입력 2023-08-20 17:16:02 수정 2023-08-20 19:33:09

광주서 폐지 줍던 노인 온열질환으로 사망해
전문가들 "고물상 이용해 무더위 쉼터라도 운영해야"

낮 최고기온이 34℃에 달했던 지난 15일 폐지를 줍는 노인이 칠성시장 일대를 다니고 있는 모습. 박성현 기자
낮 최고기온이 34℃에 달했던 지난 15일 폐지를 줍는 노인이 칠성시장 일대를 다니고 있는 모습. 박성현 기자

폐지 가격 하락과 기록적인 폭염으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노인들의 경제 활동이 자원 순환에도 크게 기여하는 만큼 관련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광주에서는 폐지를 수거하던 60대 노인이 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새벽부터 길을 나선 노인은 오후 1시 20분쯤 집으로 돌아왔다. 발견 당시 노인의 체온은 41.5℃에 달했다. 당시 광주에는 폭염특보가 발효된 상태였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노인들은 유일한 생계 수단인 폐지 수집을 중단하기도 한다. 북구 칠성동 대구능금시장에서 15년째 폐지를 모아왔던 90대 이모 씨는 연이은 폭염에 지쳐 일을 그만뒀다. 자택에서 만난 이 씨는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며 "몸이 안 좋아져 일을 그만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하루 종일 선풍기 앞에서 가만히 누워만 있는 듯 보였다.

더위를 이겨내고 폐지를 수집하러 다니더라도 노인들이 손에 쥐는 금액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골판지 1㎏당 가격은 2년 전 평균 138.3원에서 전월 72.7원으로 47% 급락했다. 이마저도 노인들이 고물상에서 골판지 1㎏당 받아 가는 가격은 50원 정도에 불과하다.

5년째 폐지를 수거하고 있는 70대 최모 씨는 "날이 갈수록 골판지 가격이 떨어진다. 요새는 3시간 넘게 돌아다니면서 100kg를 모아도 5천원밖에 못 받는다"며 "그래도 이 돈이라도 벌려면 남들보다 더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구시는 지난 2020년에 제정한 '대구시 재활용가능자원 수집인 안전에 관한 지원 조례'를 통해 정기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고 안전용품 등을 지급한다. 지난해에는 예산 2천만원을 들여 폐지 줍는 노인 1천70명에게 안전야광조끼, 우의, 야광쿨토시 등을 지급했다.

문제는 온열질환 등 기후변화나 경제적 지원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자원 순환이라는 공적인 역할도 크다며 제도권 안에서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폐지 수집 노인의 현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들은 국내 폐지 발생량의 34.8%를 수거하고 있고, 재활용되는 폐지의 경우 73.9%가 노인들이 수거한 폐지다.

배재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어떠한 소속도 없이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책 마련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이들이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고물상에 예산을 지원해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쉼터를 조성하고 얼음물 등을 지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