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1년 OECD 갈등지수 3위와 영국 킹스칼리지 분극화지수 최상위가 우리 사회 양극화의 현주소다. 덧붙이면 2018년에 비해 사회 갈등은 2배로 폭등하였고, 그 양상도 지역, 세대, 남녀, 학력,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반면 지난해 UN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꼴찌에 위치했다. 사실 이러한 갈등과 불행의 악순환은 만성적이어서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는 이념과 이익 대결을 넘어 감정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현실이다. 소위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의 망령이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글로벌 여론조사 기관 유거브(YouGov)에 따르면, 미국 민주당 지지자의 38%가 '공화당 지지자와 자녀가 결혼하면 불쾌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60년 전에 비해 10배나 증가한 수치이다. 서로 다른 정당 지지자들이 '같은 직장의 동료로 지내는 것이 불편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크게 늘었다. 지난 대선에서 패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초유의 사태도 이러한 심리의 연장선이다. 이렇듯 정서적 양극화는 상대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감정과 태도를 농축하고 있다. 민주 공동체가 이렇게까지 무너진 데는 응당 위정자들의 책임이 절대적이다. 그들은 상대의 존재를 말살하는 언동으로 지지층을 동원하며 권력을 포식한다. 이러한 행태에 관용과 통합이 발붙일 곳은 없다.
정서적 양극화의 진원은 우선 통치 제도에서 발견된다. 현대 정치에서 다수결주의가 만능의 보검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다수결주의는 상대와 적대적으로 공생하며 승자가 전리품을 독식하는 욕망을 부추긴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위성정당까지 앞세워 67.2%의 정당 득표율로 전체 의석의 94.3%(283석)를 차지했다. 민주당은 민주화 이래 최대 의석(180석)을 확보하며 의회를 장악했다. 상황이 바뀌어 2년 뒤 대선에서는 역대 최소 표차(0.7%포인트)로 승리한 윤석열 후보가 행정부를 움켜쥐었다. 양당 구조와 제왕적 대통령제 조합에서 기득권의 과대 대표(over-representation)가 종식될 일은 요원하다.
정서적 양극화의 두 번째 진원은 진영이다. 다수결을 숙주 삼아 세력을 추구하는 집단들이 진영을 구축하고 감정의 뇌관에 불을 댕긴다. 분노가 자양분인 양극화는 상대를 악마화하여 지지층의 공분을 불태운다. 따라서 극성 팬덤(fandom)과 유튜브 채널은 진영의 주축으로 성장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적폐와 카르텔 같은 피아를 가르기에 더없이 요긴한 레토릭이 수시로 동원된다. 흥미로운 점은 진영은 공당보다 인물에 더 충성한다는 것이다. 진영의 가담자들은 리더를 위해 아군 간의 내전도 불사한다. 국민의힘보다 더 가증스러운 수박 의원들과 민주당보다 더 미운털이 박힌 반윤 의원들은 이들에게 좋은 사냥감이다. 지지하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양극을 또다시 양분하는 진영 정치의 본령이 여기에 있다.
정서적 양극화의 가장 큰 책임은 리더십으로 귀결된다. 무릇 정치란 세속의 정점에 올라서는 기예이다. 세간에 완벽한 통치 제도나 이성적인 진영이 존재할 리 없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의 언명처럼 국가 지도자의 덕성과 소통은 공동체를 통합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그러나 어제의 경쟁자를 오늘의 적으로 소환하는 이 땅의 풍토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바가 없다. 단적으로 새 정부 출범 1년을 넘는 동안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얼굴을 맞댄 기억이 없다. 그 사이 양당은 두 지도자의 사당이자 진영의 포로로 전락했다. 이 한국 정치의 자화상은 정서적 양극화의 궁극적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일깨운다.
정서적 양극화는 다수결 제도 환경에서 위정자와 진영의 가담자들이 동원한 갈등이다. 따라서 개딸이 수박 의원을 색출하거나 극우 유튜버를 고위 관료로 등용하는 저급한 현실을 배격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국정의 협력자로 소통해야 한다. 혹시 부정적 투표(negative voting)라고 들어보셨는가? 20대 대선에서 투표한 국민 중 3분의 1은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고 싶어서' 투표했다고 한다. 이 어둠의 망령을 쫓아내는 빛은 결국 대화와 협치의 리더십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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