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끊기 힘든 마약, 집단 치료가 '약'…대동병원 10년째 상담

입력 2023-04-25 11:15:22 수정 2023-04-25 21:55:14

참여자 간 위안 주고받으며 "다시는 손대지 말자" 결심
정부 치료기관 전국 21곳 뿐…처벌만큼 인프라 개선돼야

지난 18일 대구 동구 대동병원에서 약물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 치료가 진행됐다. 윤수진 기자
지난 18일 대구 동구 대동병원에서 약물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 치료가 진행됐다. 윤수진 기자

"사람 통해 약을 배웠는데, 끊을 때도 사람 보고 배워요."

지난 18일 오후 2시 30분. 대구 동구 대동병원 6층 치료실에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 9명이 모였다. 긴 머리를 묶어 올린 젊은 여성부터 반바지 차림의 중년 남성, 머리가 희끗한 노인까지 구성원의 공통점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약물 중독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대동병원은 2012년부터 10년 동안 매주 약물 중독 환자들을 위한 '집단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모두 약을 끊겠다는 결심 하나로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집단 치료는 사회복지사가 최소한 개입하는 상황에서 참여자끼리 서로 위안을 주고받으며 마약 재사용 위험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취재진은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사전 양해를 구하고 치료 프로그램에 동행했다.

이날 모인 환자 가운데 7명은 입원 환자, 2명은 외래 환자였다. 병원의 사전 면담만 거치면 입원 여부에 상관없이 치료에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은 약을 끊은 기간, 투약한 약물의 수, 약물에 손을 댄 이유 등 저마다 사정이 제각각이었지만, 약물을 끊겠다는 의지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완전한 단약을 위해 매주 치료에 참석하고 있다는 A씨는 지난주에 부산에서 열린 약물 자조모임에 다녀왔다고 밝혔다. 그는 "적어도 이런 모임이 있는 날은 약을 하지 않기 때문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며 "랜선으로 진행되는 모임이 있으면 병동 사람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단 치료 과정에서 만나 친구가 되고, 서로의 가족까지 위안을 받은 사례도 있다. B씨와 C씨는 병동 내에서도 가족처럼 의지하며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주에는 서로의 부모와 함께 식사를 했다고 전했다. B씨는 "제가 약물을 한 이후로는 부모님의 사회관계도 많이 단절됐다"며 "부모님들이 서로 자녀 이야기를 하며 공감하는 모습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7년째 약물 집단 치료를 맡고 있는 안혜미 사회복지사는 "집단 치료에서는 한 사람이 이야기를 꺼내면 다른 사람이 공감하고 지지한다. 이 과정에서 안정을 얻는 사람들도 많고, 본인에게 힘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약물 환자들은 단순히 격리하는 것으로 안 되고, 집단 치료와 약물 치료 등을 적절히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마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정부에서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나 보호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를 위해 전담 기관은 전국에 모두 21곳이다. 이 중 9곳은 5년 동안 치료 실적이 한 건도 없었다.

지난달까지 대구 유일 보건복지부 지정 마약 치료기관이었던 대구의료원은 5년간 8명을 치료한 데 그쳤다. 대동병원은 지난달 정부가 지정한 치료보호기관으로 추가됐다.

박승현 대동병원 부원장은 "현재 약물 환자 입원 병상 10개 중 7명이 입원해 있는 상태다. 그나마 우리 병원이 체계적인 편에 속할 정도로 마약 환자 치료 환경은 굉장히 열악하다"며 "마약 환자는 처벌보다 치료가 우선이기 때문에 인프라를 개선하는 등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