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석 대구시 공보관
대구라는 도시 이름에는 운치가 있다. '크고 너른 언덕'(大邱)이어서가 아니다. 이름이 서정적이면서도 오랜 연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의 옛 이름인 '달구벌'(達句伐)은 '달의 도시'라는 뜻이다. 달의 도시, 참 서정적이지 않은가.
대구가 달구벌로 불린 이유는 앞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눈에 펼쳐진 드넓은 벌(伐)의 모습이 영락없는 만월(滿月), 바로 보름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원삼국시대 초기이던 2~3세기경부터 달벌, 달구벌이라 불리던 대구는 신라 경덕왕 16년이던 서기 757년에 이르러 대구로 불리게 됐다.
3세기 무렵, 대구는 국내 최고(最古)의 토성인 달성(達城)이 축조됐을 정도로 군사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는 영남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서 경상감영이 자리하고 있었고, 한양, 평양과 아울러 조선의 3대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1600년대 당시 전국 최대의 약령시가 개시(開市)한 걸 보면 조선시대부터 이미 의료도시로서 면모도 과시했다.
근·현대에 이르면 대구의 이야기는 더욱 웅혼해진다. 구한말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랏빚을 갚고자 분연히 시작한 국채보상운동,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국토를 수호한 일, 4·19혁명의 도화선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이었던 2·28민주운동 등 근현대사에 발자취를 남긴 장엄한 사건들이 차고도 넘친다.
이처럼 대구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굳건한 초석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가늠할 수 없을 가파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 시대를 지나 세상의 모든 기술들을 융합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세계 경제 질서의 본류가 됐다.
IT 기술의 발달과 사회간접자본의 고도화로 유통과 물류는 일대 변혁을 맞이했다. 풍요에 물든 사람들의 소비 행태와 삶의 양식이 변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세상이 미래를 향해 질주할 때 대구는 과거와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대구의 1인당 지역총생산은 30년이 다 돼가도록 꼴찌를 면하지 못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구를 떠나고 있다. 알지 못하는 새 대구가 잠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잠든 대구를 깨워야 한다. 이제 희망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기분 좋은 변화의 기류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미래형 산업구조에 편입할 5대 신산업의 밑그림이 큰 틀을 잡아가고 있고, 21세기형 물류·유통 체계로 안착하기 위한 대구경북신공항 건설 또한 힘찬 날갯짓을 막 시작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맑은물하이웨이 사업 착수, 어르신 교통 복지 확대, 대구로 앱 활성화 등과 같은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구조 개선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굴지의 기업들이 수조 원대에 이르는 투자를 시작했고, 제2 국가산단을 유치한 것 등은 차라리 작은 덤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야 할 여정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대한민국 최고를 넘어 세계 일류로 나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길을 가야만 한다. 내일을 위해, 미래 50년을 위해, 그리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다.
이는 대구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발휘해야 하는 이유이자 이 여정에 시민 여러분들의 동행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이 행복한 대구,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선 대구의 모습을 그려 본다. 바로 대구굴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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