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로운 차례상 풍속도

복진세 수필작가(칼럼니스트)

복진세 수필작가(칼럼니스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어 왔다. 유교 문화권이었던 우리나라의 문화는 유교 사상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유교에서는 예학이라는 학문이 있어 신·의·예를 지키는 것이 군자가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라고 배워왔다.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여 관(冠)·혼(婚)·상(喪)·제(祭) 사례(四禮)에 관한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만들어 백성은 물론 궁궐에서도 지키도록 하였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뒤, 박정희 대통령은 건전 가정의례 준칙을 만들어 배포하여 국민에게 관혼상제를 조선 시대보다 훨씬 간편하게 치르도록 하였다. 그 뒤에 많이 간편해지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 사회는 번잡한 예법이 많이 남아 있어 현실에 맞도록 수정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해 전 TV 뉴스를 보던 중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을 보았다. 화면에 귀성객들의 모습을 비춰 주면서 휴게소 쓰레기통에 부모님께서 정성껏 챙겨 주신 차례 음식이 통째로 버려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아서 온통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혼란을 수습하고 생각하여 보았다. 시어머니께서 싸 주신 정성 어린 보따리에는 송편이며, 각종 전, 약과, 사탕 등등이 들어 있을 것이다. 모두 열량이 높아서 젊은 사람들이 꺼리는 음식들이다.

그동안 오직 의무감과 체면으로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지 않았을까. 옛날 분이라서 옛날 음식만 좋아할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나도 먹지 않는 음식을 올려야만 하였는지 반성을 해 본다. 조상들도 요즈음 음식을 드시고 싶지는 않을까. 한 번이라도 생각하여 보지 않은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차례상을 차릴 때도 좌포우혜(左脯右醯), 어동육서(魚東肉西),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 등 예법을 중시하여 형식에만 치우쳤다. 정작 조상님들이 무슨 음식을 드시고 싶어 하실지 생각하여 보지 않은 나 자신이 한심하였다. 형식에만 치우쳐서 "조상의 음덕을 잊지 않고 조상을 기린다"라는 본뜻을 망각하지 않았는가를 스스로 반성하였다. 내 잘못을 인정하고서는 곧바로 실천에 옮기기로 하였다.

과일과 채소는 예전 음식과 다를 바 없지만, 바나나며 열대과일도 올리고 소고기로 만든 '산적' 대신 '스테이크', '전' 대신 '피자', '통닭'도 '양념 반 프라이드 반'으로 하여 푸짐하게 올려 드렸다. 술은 맥주와 양주도 같이 올리고 입맛대로 드시게 함은 물론, 후식으로 콜라도 한 잔 올려 드렸다.

차례상을 마주하고 아들과 음복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어차피 슈퍼마켓에서 사다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음식을 마련하였다고 한들, 신토불이는 물 건너간 거고, 그렇게 만든 음식을 자손들도 먹지 않고 버린다면 그것이 옳은 방법일까? 아빠가 죽기 전에 우리 조상님 산소를 모두 개장하여 화장하려고 한다. 제사는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모여서 통닭 한 마리 사다 놓고 맥주 한잔 하면서 조상을 추억하며 지내면 그것이 제사 아니겠니." 내 말에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치켜세운다.

나는 전통도 시속에 맞게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례를 현실에 맞게 바꾸고 나니 마음이 가볍다. 어차피 설이나 추석 제사 등을 지내는 것도 내 세대에 끝나고 말 일일 텐데 시속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