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삼국지] 유동규는 관도대전의 허유일까?

입력 2022-10-23 21:14:47 수정 2022-10-25 02:12:04

유동규(1969~), 허유(?~204). 경기도, 코에이 삼국지11
유동규(1969~), 허유(?~204). 경기도, 코에이 삼국지11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입'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대장동 의혹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1년 전 창밖으로 휴대폰을 던진 것을 시작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으면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서는 일절 열지 않았던 입이, 최근 구속 만료로 석방된 뒤로는 시쳇말로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언론이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했던 그가 실은 '더욱 최측근'(대선 경선 과정에서 남욱 변호사 등으로부터 8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비서실 정무조정실장 등)들 및 이재명 대표에 의해 희생양이 됐고 이에 더이상 잃을 게 없는 처지에 강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처럼, 이걸 바탕으로 하는 작심 폭로가 최근 잇따랐고 또한 계속 이어질 태세다.

▶유동규 전 본부장은 우선 구속 만료로 석방된 다음날인 2022년 10월 21일 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하고 있는 '석방 방관 등을 조건으로 검찰이 회유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언론에 "최소한 뭐에 회유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날 이재명 대표가 한 기자회견을 두고 "재판 중 잠시 기사를 봤다. 굉장히 재미있더라"면서 "의리?"라고 한 뒤 웃고는 "이 세계는 그런 게 없더라. 내가 착각 속에 살았던 거 같다. 구치소에서 1년 명상하면서 깨달은 게 참 많다. 내가 너무 헛된 것을 쫓아다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더 나아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김용이 20억원을 달라고 해서 7억 원정도, 6억 정도 전달했다. 이재명 대표가 모를리가 있겠느냐"면서 "내가 벌 받을 건 받고, 이재명 명령으로 한 건 이재명이 받아야 한다"라고 했다.

이런 '기세'라면 현재 불구속 상태인 그가 계속되는 언론 인터뷰 및 현재 받고 있는 재판 과정 등에서 추가 폭로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21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21일 '대장동 개발 비리'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대장동 개발 사업 뇌물 수수 등 의혹으로 재판 중인 유 전 본부장은 전날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됐다. 연합뉴스

▶문득 떠올려지는 삼국지정사 및 연의 속 인물은 '허유'이다. 그리고 조조와 원소가 싸워 원소가 대패한 '관도대전'이라는 배경이다.

원래 원소와 친했던 허유는 관도대전에 원소군 참모로 종군 중 부정부패가 적발됐고, 이에 원소의 또 다른 참모 심배가 그의 가족을 체포하자 원소를 배신하고 조조에게 투항했다.

이어 허유는 조조에게 원소군의 핵심 군량 수송대가 오소에 있다는 기밀을 전했고, 조조군은 오소를 기습해 군량을 모두 불태우며 이전까지 밀리던 싸움 구도를 뒤집었다.

결국 관도대전 승리는 조조의 차지가 됐다.

▶역사 및 이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 속 조조와 원소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다만 원소는 약점이 드러나면서 무너졌다. 조조는 관도대전 초중반 궁지에 몰리면서도 약점은 끝까지 노출하지 않았다.

선과 악은 늘 모호하지만 승자와 패자는 항상 분명하다.

유동규 전 본부장의 최근 폭로가 이재명 대표의 약점을 가리킨 것인지 여부는 두고 볼 일이다. 아직 검찰 수사도, 법원 재판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동규 전 본부장이 쏟아낸 폭로의 진위 여부 역시 검증 초기 단계이다. 그러니 요즘 말로 '기어 중립'.

다만 역사 및 그걸 바탕으로 하는 소설에서는 약점이 간파되며 치명상을 입은 쪽이 대체로 몰락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배신감'은 그런 상황을 만드는 주요 동력이 됐다. 배신감에 원소를 떠나 조조에게 간 허유는 있었으나, 배신감에 조조를 떠나 원소에게 간 누군가는 없었던 게 결정적 차이이다.

그리고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삼국지정사에서도 삼국지연의에서도 허유는 조조에게 및 허저(조조의 심복)에게 베어지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는 점이다.

유동규 전 본부장 역시 검찰로부터 8억원대(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기자로부터 5억원, 위례신도시 개발 민간사업자 정모씨로부터 3억원 등)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으로, 그의 인터뷰 발언처럼 '벌 받을 건 받는' 게 마땅하다.

원소가 패망하고 허유도 죽은, 역사와 소설이 일맥상통하는 대원칙 하에서 말이다.

2015년 뉴질랜드 출장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그 사이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기인 성남시의원 제공
2015년 뉴질랜드 출장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그 사이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기인 성남시의원 제공

PS1.
유동규 전 본부장이 해당 논란 발생 초기였던 지난 2021년 9월 24일 나온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이 지사(당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그 해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되기 전이자 10월 25일 경기도지사직에서 사퇴하기도 전) 측근이 아니다"라고 말한 게 꽤 사실이었던 셈이다.

이어 이재명 대표(당시 경기도지사)가 열흘 뒤였던 그 해 10월 3일 경기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기지역 공약 발표' 후 경기도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동규 전 본부장이 측근인가'라는 취지 질문에 "비서실에서 지근거리에서 보좌를 하던지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측근이냐 아니냐는 더티한(더러운) 논쟁"이라며 "(측근이라는 것이)사전에 나온 개념도 아니고, 가까운 측근 그룹은 아니다. 거기에 못 낀다"라고 한 것도 꽤 사실이었던 셈이다.

PS2.
이에 다음날인 10월 4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 당시 유동규 전 본부장이 '이재명의 장비'로 수식된 점을 가리킨듯 "유비가 지금 장비를 모른다고 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는데, 이제는 힘을 잃은 언급이 됐다.

둘 다 아니라 하니까. 이 세상엔 거짓도 많지만 솔직함도 많다.

만약 '이재명의 장비'가 맞았다면, 허유 같은 참모가 아닌, 촉나라 강유의 위나라 북벌 당시 위나라 사마의의 쿠데타(고평릉 사변)로 인해 신변에 위협을 느껴 촉나라로 투항한 장수인 '하후패'에 비유할 여지도 있었다.

하후패(?~?). 코에이 삼국지11
하후패(?~?). 코에이 삼국지11

PS3.
만일 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하는 '검찰 회유설'을 소설로 옮겨 풀어낸다면, 불구속 상태라 입단속이 불가능한 자의 무쌍난무를 적극 의도했다는 설명이 더해질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