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의 마음과 마음] 내 마음을 털어놓을 곳은 없을까

입력 2022-07-07 13:54:03 수정 2022-07-07 17:36:30

펜데믹이 부른 테크노 스트레스…신체적·정신과적 질환 유발
편의점 문 열듯이 정신과 쉽게 찾을 수 있었으면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얼마전 넷플릭스에서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보았다.요즘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구씨와 염미정을 모르면 대화가 안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사람들은 왜 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건지 호기심이 생겼다.

일에 치이고 상사 뒤치다꺼리하며 살아가는 직장인들, 군중 속에 있으면서도 혼자라는 외로움에 시달리는 주인공을 보면서 동일시를 통한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영화나 드라마는 대리 만족감을 주거나 교육적 효과도 있어서 치유적 도구가 되기도 한다.

지난 2년간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의 생활을 많이 바꿔놓았다.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간관계가 소원해졌고,저마다 혼자 지내는 방법에 익숙해졌다. 대화는 SNS를 통해 이루어지고 화상회의로 조직은 흘러갔다. 생필품 구매나 예방접종 예약 등 거의 모든 일상은 컴퓨터를 통해야 했다. 이런 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스트레스를 안겼다. 바로 테크노 스트레스다.

198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크레이크 브로드가 이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현대인들은 테크노 과부하 상태로 더 많이 더 빠르게 처리해야했고,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신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게 되었다.

이런 염려와 불안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혈중 코티솔 농도를 높이고,이것은 신체 면역을 저하시켜서 관절염이나 비만 등 각종 신체 질환을 유발하고, 집중력저하, 기억력저하, 예민함, 과각성, 우울감 등의 정신과적 질환의 가능성도 높인다.

인간관계가 줄어들면 스트레스도 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정반대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혼자 있다는 게 불안해지고, 다시 사람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자유와 타인과의 교감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와 분리되어 동떨어져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일인지 지난 2년간 뼈저리게 느꼈다.

이런 심리상태의 시청자에게 나의 해방일지는 편안한 고향집 같은 정서를 선사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온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다. 어머니는 푸짐하게 음식을 장만하고 듬뿍 덜어준다. 지나가는 친구도 숟가락 하나만 보태서 밥을 먹여서 보낸다. 요즘 1인 가족시대에 1인분량의 식품이 잘 팔리고 1인 좌석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식구(食口)란 입으로 함께 먹는 사람들을 뜻한다. 늦은 저녁 일터에서 돌아온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하면서 서로의 안색을 살피기도 하고 불만을 터트리며 다투기도 하지만 그들의 식탁은 다음 날 아침에도 또 이들을 기다린다.

두 번째로 눈여겨 본 것은 편의점이다. 주인공은 편의점 본사 직원이고 자기에게 할당된 가게를 관리하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편의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쉬고, 담배도 피우고 처음 보는 이와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다. 편의점 문은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하루종일 닫혔다열렸다 반복한다.코로나로 거리는 한산해도 편의점은 불이 꺼지는 날이 없었고 항상 열려있었다.

캄캄한 밤거리를 걷다가 편의점 불빛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든든한 동네 오빠를 만난 듯 밤길이 안심이 되곤 했다. 망망대해의 등대 같은 느낌이랄까. 목마를 때 생수 한 병의 고마움을 알게 해준 것도 편의점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허기진 사람과 나눠먹기도 하는 정겨운 장면도 있다.

편의점이 마치 정신과 병원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신과는 정신이 이상하거나 집에 우환이 있거나 성격이 나빠서 찾는 곳이 아니다. 편의점의 물건처럼, 일상의 불편한 감정을 다루는 곳이 정신과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겹겹이 쌓아두지 않고 시원하게 털어내면 병이 되지 않고 뇌가 건강해진다.편의점 문을 열듯이 정신과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병이 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등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에너지를 과소비 시키고 결국 번아웃 증후군으로 이어진다.

무기력감을 해결하기 위해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된다는 생각에 고착되어 채소와 과일을 얼마나 먹었는지, 비타민 함유량이 얼마인지, 하루에 몇 칼로리를 소모했는지, 잠은 얼마나 잤는지, 렘수면은 몇 분간 지속되었는지 등 매일 체크하며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건강이 나빠져서 곧 중병에라도 걸릴 듯이 걱정을 한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 결과는 덜 걱정하고, 가족이나 좋아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웃에게 친절하고, 더 많이 웃는 일처럼, 저울이나 수치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의 효과에 더 주목하라고 말한다. 식단과 신체 단련에 쏟는 노력만큼 더 나은 인간관계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와 잘 지내기위해서는 마음의 거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충고를 참아내고 대신에 그가 좋아질 때까지 곁에서 기다려주는 여백이 필요하다.이런 마음의 거리두기가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좋은 방법이 된다.

많은 생각을 버리기 위해 자주 명상을 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내 마음의 해방일지는 어디까지 써내려갔는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성미 마음과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