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장이 알리는 'AI 시프트'…칩에서 앱으로, 2010년의 스마트폰처럼

입력 2026-11-06 15: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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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데이터센터 규제 공포에 반도체 폭락, 코스피 5000선 붕괴
2007년 아이폰이 그랬듯 '지루한 시기'가 앱 경제를 낳았다
호황은 끝나는 게 아니라 인프라에서 응용으로 자리를 옮기는 중

6일 코스피가 8% 넘게 급락해 장중 5,000선이 무너진 가운데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120.54포인트 내린 5,263.26으로 개장한 뒤 낙폭을 확대해 9시 3분 기준 전 거래일 대비 471.89포인트(8.76%) 하락한 4,911.91까지 떨어지며 매매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했다. 코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23.98포인트(3.53%) 내린 654.43으로 출발한 뒤 낙폭이 확대돼 오전 9시 6분께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연합뉴스
6일 코스피가 8% 넘게 급락해 장중 5,000선이 무너진 가운데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120.54포인트 내린 5,263.26으로 개장한 뒤 낙폭을 확대해 9시 3분 기준 전 거래일 대비 471.89포인트(8.76%) 하락한 4,911.91까지 떨어지며 매매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했다. 코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23.98포인트(3.53%) 내린 654.43으로 출발한 뒤 낙폭이 확대돼 오전 9시 6분께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19개월 만에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나스닥이 5.5%, S&P500이 4.4% 빠졌고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하루 만에 12.25% 추락했다. 엔비디아가 10%, AMD가 17% 밀렸다.

충격은 곧바로 태평양을 건넜다. 코스피는 5일 5.28% 급락해 5,383.80으로 마감했고, 6일 개장 직후에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며 9개월 만에 5000선을 내줬다. 외국인은 5일 하루에만 3조4천억원어치를 던졌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틀 연속 7~9%대 낙폭을 기록했다.

시장은 이 장면을 'AI 호황의 종언'으로 읽고 있다. 그러나 2007년 혁신의 아이콘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뒤의 궤적을 복기하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지금 AI는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범용 기술이 거치는 두 번째 국면에 들어서는 중이다.

◆ 방아쇠는 '선거'였다

이번 폭락의 직접 원인은 미국 중간선거다.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텍사스·조지아 등 데이터센터가 몰린 주의 주지사 자리까지 가져갔다. 텍사스 주지사 당선인 지나 히노호사는 주의회가 관련법을 만들 때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승인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공약했다. 미 IT매체 디인포메이션 집계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거나 우세한 36개 주 주지사 후보 가운데 34명이 데이터센터 개발에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제한을 지지했고, 12개 주에서는 일시 중단까지 요구했다. 데이터센터 관련 주민투표 47건 중 46건에서 개발 제한 쪽이 이겼다.

전기요금 상승과 물 부족에 대한 유권자 반발이 정치로 번진 것이다. 여기에 지난 9월 연준의 25bp 금리 인상, 빅테크 3분기 실적의 기대 미달이 겹쳤다. 수년간 쌓인 'AI 거품론'에 불이 붙을 조건은 충분했다.

◆ 왜 시장은 '죽음'으로 읽었나

거품론의 뿌리는 두 가지다. 하나는 투자와 수익 사이의 시간차다. 빅테크는 매년 수천억 달러를 데이터센터에 쏟아붓는데 그 돈이 언제 매출로 돌아올지 불확실하다. 다른 하나는 쏠림이다. AI 관련주가 S&P500 시가총액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엔비디아 한 종목이 8%에 육박하는 구조는 1974년 이후 최고 수준의 집중도다. 한 고리가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린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불안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인프라 단계'의 불안이라는 점이다. 투자가 수익으로 전환되지 않는 것은 아직 응용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쏠림이 심한 것은 지금까지의 호황이 칩과 데이터센터, 즉 삽과 곡괭이 쪽에서만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국면은 역사적으로 반드시 다음 국면으로 넘어갔다.

◆ 2007년의 놀라움, 2010년의 지루함

아이폰은 2007년 6월 출시됐다. 첫해의 충격 이후 매년 나온 신제품은 '카메라가 조금 좋아지고 화면이 조금 커진' 수준이었다. 2010년 전후 "스마트폰 혁신은 끝났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하드웨어의 놀라움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진짜 혁신은 그 지루한 시기에 일어났다. 앱스토어는 2008년에 문을 열었고, 우버와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은 모두 2009~2010년에 등장했다. 배달앱과 모바일 뱅킹, 쇼트폼 플랫폼은 그보다 더 뒤였다. 애플이 집계한 앱스토어 생태계 거래액은 2024년 한 해 1조3천억 달러에 이른다. 기기 한 대의 놀라움이 식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 위에 무엇을 지을지 제대로 고민하기 시작했고, 기술이 매년 뒤집히지 않고 안정되자 비로소 그 위에 사업을 세울 수 있었다.

닷컴 버블도 같은 구조였다. 2000년 붕괴 직전까지 통신사들은 쓰지도 않을 광케이블을 과잉 매설했다. 그 과잉 인프라가 헐값이 된 뒤에 유튜브(2005)와 넷플릭스 스트리밍(2007)이 그 위에서 태어났다. 거품이 터진 자리에 남은 것은 폐허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공짜로 쓸 기반이었다.

◆ 숫자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주가가 아니라 실물을 보면 AI 수요가 꺾였다는 신호는 아직 없다.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9월 경상수지는 614억6천만 달러 흑자로 월간 사상 최대다. 통관 기준 반도체 수출은 1년 전보다 260.3%, SSD는 392.3% 늘었다. 9월 상품 수출 1,307억 달러는 전년 대비 92.4% 증가한 숫자다. 코스피가 5%씩 빠지던 바로 그날 나온 통계다.

공급자 쪽도 마찬가지다. 엔비디아의 올해 1분기 매출은 85% 급증했고, 젠슨 황 CEO는 그 동력으로 에이전트 AI 수요를 꼽았다. 수요자 쪽은 더 흥미롭다. 기업용 AI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는 지난 3일 기업들의 AI 도입 확대로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발표했다. 가트너는 올해 전 세계 AI 에이전트 소프트웨어 지출이 2,065억 달러로 전년(864억 달러) 대비 139%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칩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즉 응용 단계의 돈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2010년의 앱스토어가 그랬던 것처럼.

◆ 규제는 종언이 아니라 비용이다

데이터센터 규제가 AI 투자를 멈출 수 있을까. 증권가 추산으로 이번 규제 움직임의 영향권에 드는 데이터센터 용량은 최대 13GW로, 2035년까지 미국에 추가될 150GW의 8% 안팎이다. 김예슬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데이터센터 정책은 건설 저지가 아니라 비용 부담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며 리스크가 연방이 아닌 주 단위 규제에 있다고 짚었다. 텍사스에서 막히면 다른 주로, 미국에서 비싸지면 해외로 옮겨갈 뿐 수요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규제가 던지는 메시지는 다른 데 있다. 전기요금과 물 문제로 유권자가 반발한다는 것은 AI 인프라가 이미 일상의 비용 구조를 건드릴 만큼 커졌다는 증거다. 아무도 쓰지 않는 기술을 두고 주민투표를 하지는 않는다.

◆ 한국의 자리, 삽에서 집으로

한국 증시가 아시아 다른 시장보다 더 크게 흔들린 이유는 분명하다. 반도체 쏠림이다. 같은 날 일본과 대만의 낙폭은 1%대였다. 한국은 AI 호황의 '삽과 곡괭이' 단계에서 가장 큰 수혜를 본 나라이고, 그래서 그 단계의 공포에도 가장 크게 노출돼 있다.

여기서 아이폰의 교훈은 두 갈래다. 첫째, 메모리 수요는 응용이 늘수록 커진다. 모델 학습이 끝나도 그 모델을 수억 명이 쓰는 추론 단계가 남아 있고, 추론은 메모리를 더 먹는다. 인프라 쪽 호황이 끝나는 게 아니라 성격이 바뀐다는 얘기다. 둘째, 그럼에도 한국이 반도체에만 머물면 2010년대의 교훈을 반복하게 된다. 스마트폰 시대에 OS와 앱스토어는 미국이 가졌지만, 카카오톡과 배달의민족과 쿠팡은 한국이 만들었다. AI 시대에도 모델과 칩은 빅테크가 가져가겠지만 응용 시장은 아직 비어 있다. 그 시장은 기술이 '지루해질 때' 열린다.

5일과 6일의 폭락은 AI 호황의 끝이 아니라, 호황의 무게중심이 인프라에서 응용으로 옮겨가는 진통에 가깝다. 아이폰이 지루해졌다고 스마트폰 시대가 끝나지 않았듯, 엔비디아 주가가 10% 빠졌다고 AI 시대가 끝나지는 않는다. 바뀌는 것은 누가 돈을 버느냐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이번 급락은 수요가 꺾여서가 아니라 수요가 어디서 나올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라며 "데이터센터 규제가 현실화돼도 영향은 건설 지연과 비용 상승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추론 단계로 갈수록 메모리 수요는 오히려 늘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쏠림이 심한 국내 증시는 이런 조정에 가장 크게 흔들리지만, 실적이 훼손됐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AI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AI의 삽과 곡괭이를 파는 나라로 이번 호황의 1막을 가장 잘 치렀다"며 "2막은 그 인프라 위에서 누가 쓸 만한 서비스를 만드느냐의 싸움이고, 여기엔 반도체만큼의 준비가 돼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