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교영] '괜찮아'가 일본 유행어

입력 2026-11-06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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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누가 내 얘기 안 했어'는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잊힌 '국민 배우'의 고군분투를 다룬 일본 드라마다. 배우 야쿠쇼 코지의 연기가 압권(壓卷)이다. 드라마에선 엉뚱하게도 한국어가 튀어나온다. 한류에 빠진 사우나 관리인이 "괜찮아요"를 쏟아낸다. 찰진 한국어 욕설까지 거침없이 내뱉는다. 뜬금없는 우리말에 귀가 의심스러웠다. 알고 보니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본어'(韓本語)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다.

한본어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쓰는 말이다. '진짜' '미안해' '괜찮아'는 물론 '형' '언니'도 인기다. 일본어 '마지(진짜로)'를 붙여 '마지 고마워' '마지 미안해'라고도 한다. '귀여워'를 '귀요이', '대박'을 '대바이'로 바꿔 쓰기도 한다. 한국어가 일본 젊은이들의 일상에 파고든 것이다. '괜찮아'는 청년의 불안을 위로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그래선지 이 단어는 일본 고교생 대상 설문조사에서 유행어 3위에 올랐다. 일본 맥주 광고에서 걸그룹 가수가 '괜찮아'를 외치기도 했다. 괜찮은 국위선양(國威宣揚)이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한본어 유행을 다뤘다. K팝과 K드라마의 인기가 한국어의 위상(位相)까지 높였다는 분석이다. BTS와 블랙핑크가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2018년 무렵부터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한국 콘텐츠 소비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어가 한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문화적 코드가 됐다.

일본어는 우리에게 아프고 불편한 기억을 남겼다. 일제강점기는 조선어를 말살하려고 했다. 일본어 사용과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했다. 광복 후에도 '단도리' '나라시' '엥꼬' 같은 일본어 찌꺼기가 일상에 남았다. '사회' '개인' '철학' 같은 근대적 개념어(槪念語)도 일본식 번역을 거쳐 들어왔다. 당시 일본어 수용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다. 지금은 정반대다.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 문화에 매료돼 우리말을 배우고 즐긴다. 한일 관계가 문화적으로 한층 대등해졌다는 의미도 있다. 한때 일본어 잔재를 걷어내느라 애썼던 우리에게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우리말이 국경을 넘어 문자(여행 안내용)가 아닌 일상 대화에 쓰인다니, 우쭐하다. 언어는 문화의 힘이다. "세종대왕 전하, 진짜 아리가토!"

kimky@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