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레미제라블

입력 2026-11-04 09:37:50 수정 2026-11-04 10:41:50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오정일
오정일

2018년 11월 프랑스에서 '노란 조끼' 시위가 있었다. 시작은 유류세(油類稅) 인상에 대한 반발이었다. 마크롱 정부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유류세를 인상했다. 그러나 서민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농촌이나 중소도시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다. 이들에게 자동차는 필수품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마크롱 정부는 금융자산 과세를 줄였다. 결과적으로 부유층은 세금을 덜 내고 서민은 더 내게 됐다. 시위대는 생활비 부담과 소득 불평등 문제까지 제기했다.

2026년 9월 프랑스 고등학교 교사들이 파업했다. 교사 부족과 교육 환경 악화가 원인이다. 이번에도 에너지 가격과 생활비 상승에 따른 경제적 불만이 표출됐다. 아니 폭발했다. 프랑스 재정 적자는 심각하다. 복지 지출이 GDP의 30%나 된다. 다른 선진국보다 연금을 일찍 받고 액수도 크다. 개인이나 국가나 빚을 줄이는 방법은 같다.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거나. 증세(增稅)는 노란 조끼 시위를 초래했다. 긴축 재정으로 나빠진 공교육은 폭동의 방아쇠가 됐다.

유럽과 미국의 강경 우파는 이민자 가정의 무슬림 청년들이 과격 시위를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증거는 없다. 이번 시위가 파리 외곽에서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이 지역에는 청년과 이민자가 많다. 이민자 상당수는 무슬림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하다. 이번 시위의 동력은 생활고다. '레미제라블'이 주동자다.

가난한 사람들은 증세를 감당하지 못한다. 세금 낼 돈이 없다. 공공서비스 축소도 견디기 어렵다. 더 나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부유층 증세를 주장해 왔다. 그는 조세 불공정을 노란 조끼 시위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해결책으로 '국민연대세'를 제안했다. 순자산 1억 유로 초과분에 연 5%, 10억 유로 초과분에 연 10% 세율을 적용하는 안이다. 이 돈을 교육, 연구, 의료, 에너지 분야에 투자하자고 했다.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인기 있는 것은 아니다. 덜 싫어할 뿐이다. 민주당에서는 민주사회주의자들이 돌풍을 일으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민주사회주의의 세(勢)가 커졌다.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버니 샌더스가 선전했다. 맘디니는 뉴욕 시장에 당선됐다. 이번에는 워싱턴 D.C. 시장도 배출할 것으로 보인다.

프란체스카 홍은 위스콘신 주지사 민주당 경선에서 0.41%포인트 차이로 낙선했다. 한국계 싱글맘이다. 바텐더이자 요리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민주사회주의가 인기를 얻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소득 불평등은 지금 가장 심각한 재앙이다. 자산 1조 달러 이상인 '조만장자'가 탄생하는데 위스콘신주 최저임금은 시간당 7.3달러다. 점진주의는 무책임하다. 큰 위기에는 큰 해결책이 필요하다."

버니 샌더스는 자신을 민주사회주의자라고 하지만 사회민주주의자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온건하다.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력 집중을 교정하는 것이 목표다. 점진주의자다. 반면 민주사회주의자들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자체를 문제시한다. 복지 확대와 소득재분배로는 부족하다. 목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자본주의 너머에는 사회주의가 있다. 결국 민주사회주의는 사회주의다. 다만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한다.

민주사회주의의 부상(浮上)은 사회민주주의가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샌더스식 개혁조차 좌절되자 이제 사람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원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생겼다. 이는 그저 남의 나라 일인가? 우리나라에서도 조짐이 보인다. "한국에서도 프랑스와 같은 대규모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가?"라는 질문에 30대 73%, 20대 63%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응답자 65%는 우리나라도 생활비 상승과 교육환경, 공공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여당의 한 의원은 폐버스를 개조해 청년 주택으로 쓰자고 했다. 국토부는 고시원에 욕조 설치를 허용하는 안을 내놨다. 현실과 거리가 먼 정책들이다.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30대 77%, 20대 70%로 나타났다. 이유 있는 불만이다.

오정일(경북대 행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