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의 미각기행] 한국 원두커피의 개척자들

입력 2026-11-04 14: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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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명가' 창업 안명규, 핸드드립 기반 원두커피문화 전파
부산 '모모스', 강릉 '박이추보헤미안',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격

한국 커피의 현대화는 원두커피를 직접 드립해 내린 개척자들이 있다. 현재 대구 커피명가 안명규, 강릉의 박이추 보헤미안과 테라로사, 부산의 모모스 등이 국내 브랜드로 전국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커피의 현대화는 원두커피를 직접 드립해 내린 개척자들이 있다. 현재 대구 커피명가 안명규, 강릉의 박이추 보헤미안과 테라로사, 부산의 모모스 등이 국내 브랜드로 전국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힙합의 개척자로 불리던 서태지와 아이들, 1992년 3월, '난 알아요'란 곡으로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뒤흔든다. 대구커피계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 바로 '커피명가'를 창업한 안명규이다. 달달하고 정체 불명의 '믹스커피시대'에 핸드드립에 기반한 원두커피문화를 전파했다. 1990년 경대북문에서 시작, 1992년 삼덕동 본점(2021년 33년 역사를 끝으로 철수), 이어 2010년부터는 커피박물관 스타일의 '라핀카'를 거쳐 2022년 경상시 압량읍 금구리 과수원존으로 이전, 완전체가 된 제3기 커피명가 본점시대를 론칭한다. 대구를 '커피의 도시'라고 말할 때 그의 외길 인생을 빼놓을 수는 없다.

부산 커피의 센터격인 모모스 온천점.
부산 커피의 센터격인 모모스 온천점.

현재 전국적 파급력을 가진 국내파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은 커피명가를 비롯, 부산의 '모모스', 강릉의 '박이추보헤미안'과 김용덕이 판을 깔아놓은 '테라로사'가 대표격이다. 부산커피의 자존심을 한껏 올려준 모모스(Momos), 2007년 온천장의 작은 테이크아웃커피점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주말 알바생으로 출발한 바리스타 전주연이 2019년 선풍을 일으킨다.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들컥 우승을 차지한 것. 모모스는 부산의 4개 직영점만 고수할 뿐 서울로 상경하지 않았다. 영도가 커피특구급으로 급부상되고 크루즈까지 머물다 가니 굳이 상경할 필요도 없다는 분석이다. 직접 부산으로 사람을 불러모으겠다는 전략이다.

강릉을 커피의 도시로 만들게 하는데 일조한 테라로사도 첫 시작은 소박했다. 김용덕은 1998년 21년간 일했던 조흥은행에서 명퇴, 2002년 강릉 구정면 학산리에 커피 로스팅 공장 겸 매장을 오픈한다. 꼭 부산 수영구 고려제강 부지를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인 'F1963' 스타일이다. 그들은 커피에 복합문화를 접목해 커피점을 하나의 문화관광지로 특화시켜 전국화에 성공한다. 그런 김용덕인데 최근 자신의 지분을 모두 처분하고 테라로사를 떠났다. 아무튼, 지난달 26일, 대구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5층에 테라로사 대구점이 오픈됐다.

강릉 보헤미안 커피의 박이추.
강릉 보헤미안 커피의 박이추.

◆1서3박
한국 커피 1세대 역사를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속설이 있다. '1서 3박'이다. 한국 커피의 리더로 불리는 '서정달·박원준·박상홍·박이추'를 말한다. '꼭 그들인가'라며 이설을 건네는 이들도 적잖다. 박이추(72)를 제외한 3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형국이다. 박이추는 지금 강릉에서 보헤미안이란 브랜드를 갖고 자신만의 커피왕국을 지키고 있다. 일본 규슈 오이타에서 태어난 일본교포2세인 그는 1974년 한국으로 건너와 목장업을 하다가 접고 이어 경기도 포천, 문막 등지를 떠돌다가 1986년 일본 도쿄로 커피유학을 떠난다. '일본커피연구소'의 가라사와 소장한테 레슨을 받는다. 1988년 서울 혜화동에서 '가배보헤미안'을 오픈한다. 이후 10여년 서울의 대표격 핸드드립 커피전문점으로 자릴 잡는다. 2000년초 강릉으로 거점을 옮긴다. 연곡면 영진리 보일 듯 말 듯한 언저리에 깃을 튼다. 목요일부터 일요일에만 '단골찬스'를 위해 자기 아지트 팩토리에서 직접 드립을 해준다. 보헤미안 유전자 탓일까, 강릉 시절을 접고 울진으로 떠날 모양이다.

커피명가의 안명규
커피명가의 안명규

◆커피명가
대구 커피의 탈근대화는 커피명가로부터 시작된다. 안명규. 한때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커피마니아로 인정받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경북대 북문 언저리에 닻을 내리고 대구의 커피 품격을 붐업시킨다. 1991년 커피에 공연문화를 결부시키고 실내금연 원칙까지 고수한다. 커피명가는 뽕짝판에 불쑥 등장한 '재즈' 같았다. 1992년 본점을 삼덕1가로 이전한다. 이후 커피명가의 행보는 한국 커피산업의 신기원이다시피 했다. 1992년 자가 로스팅을 필두로 1995년에는 커피숍으로서는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1997년에는 로스팅 머신 개발, 2001년에는 바리스타 교육시스템, 2002년부터는 생두를 산지에서 직구(직접구입)한다. 2003년에는 컨설팅 시스템을 구축하고 2007년부터 프랜차이즈를 시작한다. 라 핀카는 안명규를 위한 '커피뮤지엄' 같은 곳이다. 1991년부터 그는 국내에서는 희소성이 있는 커피묘목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재차 총력을 집중시켜 총사령부를 경산시 임당의 한 과수원 구역에 세운다. 멀리서 보면 미술관 같다. 여기에 참으로 귀중한 소장품이 하나 있다. 세상에 몇 대 없는 브라질 현지에서 사용하다 방치된 100년 넘은 빈티지 생두선별기다. 그가 보물이다 싶어 수송료만 무려 1억원 들여 갖고 왔다.

커피명가는 1990년 론칭돼 2022년 경산으로 본점 사령부를 이전했다.
커피명가는 1990년 론칭돼 2022년 경산으로 본점 사령부를 이전했다.

자본의 격랑을 타면서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초심'(初心) 때문이다. 자본의 얼굴에 문화의 탈을 씌워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2009년 한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K) 초대회장이 된다. 요즘은 2022년 창립된 대구커피협회를 이끌며 대구커피페스타 축제를 국제화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커피명가의 명물인 100년 넘은 브라질 생두선별기.
커피명가의 명물인 100년 넘은 브라질 생두선별기.

정말 엄선된 마니아를 위한 오마카세 스타일의 원두파티를 살롱음악회처럼 진행하려고 한다. 필자도 그의 초대를 받아 4종류의 각기 다른 드리퍼를 통해 스며 나온 스페셜티 커피향을 맡아보고 왔다. 딸기케이크에서 진화한 무화과케이크도 여전히 진기를 뿜고 있었다.

커피클럽의 이병규
커피클럽의 이병규

◆이병규 커피클럽
꾼들 사이에는 '미스터 게이샤'로 불리는 이병규. 올해 일흔이다. 숱한 도시를 두고 굳이 대구에 눌러살고 있다.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본능적으로 대구였던 모양이다. 그는 '은둔고수 '같다. 좀처럼 대세에 섞이지를 않는다. 그냥 '고고청청'한달까. 1서3박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사실 한국의 '원조담론'은 자못 무협지 무공다툼 같은 구석이 없진 않으니깐.

그는 스스로 '뻘짓'하다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팔색조 같은 사내다. 건축사, 그리고 재즈마니아, 미술계의 흐름을 좋고 그러면서도 내면은 빈티지오디오광의 기운으로 충일하다. 그리고 이 흐름을 하나로 묶어주는 건 단연코 커피다. 그것도 여느 커피보다 수십 배 비싸고 계통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기 힘든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의 게이샤만을 무슨 '신앙'처럼 고집한다.

간판도 없다. 알아서 오는 단골뿐이다. 이웃들도 도대체 저 공간이 무엇에 쓰는 건지를 가늠할 길이 없다. 기본 3만원부터 시작하는 한 잔 가격에 대해 단골들은 토를 달지 않는다. 정말 구색을 갖춘 하이브리드급 한 잔은 8만원.

18g짜리 1인분 포장지를 뜯어 430cc를 내려준다. 어잉! 한 모금 맛을 보니 기존 커피라인이 아니다. 노랑과 황색의 경계를 파고드는 빛. 홍차, 아니 산미가 감도는 보이차 같은 향취도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그 향을 재스민과 오렌지꽃을 연상시키는 화사한 꽃향으로 분류한다. '너무 묽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으니 그는 그게 게이샤 만의 진미(眞味)란다. 약배전의 묘수였던 걸까? 그래서, 6천~7천원에 길들여진 일반인들은 가격도 그렇고 해서 여기 올 확률이 낮다.

한 명도 오지 않는 날에도 그는 혼자 잘 논다. 반세기 함께 해온 플레이리스트로 묶어놓은 곡들을 샘물처럼 퍼올린다.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고 쿵짝이 맞는 꾼들과 '묻지마 뻘짓파티'를 하자는 게 이 클럽의 모토다. 필요 경비는 건축일을 해서 대충 충당한다.

그의 커피 이력은 올해로 38년, 그의 사부는 도쿄 긴자의 뒷골목에 있는 '카페 드 란브르'를 사수한 1914년생 '세키구치 이치로'였다. 24년 전, 포항시청 근처에서 핸드드립 전문 '커피 아뜨리에'를 오픈한다.

2008년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게이샤' 씨앗을 갖고 들어왔다. 2010년 1월 수확 때 에스메랄다 농장주 피터슨가의 사람들과 함께 식사도 했다.

이병규 가게에서 키워낸 게이샤가 꽃을 머금고 있다.
이병규 가게에서 키워낸 게이샤가 꽃을 머금고 있다.

◆게이샤란
'게이샤'. 일본 기생(藝者) 이름이 아니다. 원산지인 에티오피아 서남쪽 카파의 숲인 '겟차(Gecha)'의 영어식 발음(Geisha)이다. 케냐 탄자니아와 코스타리카를 거쳐 '파나마 게이샤'란 이름으로 유명해진다.

원래 에티오피아 게이샤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그렇고 그런 종자였었다. 파나마로 건너와 돌연변이를 일으켜 독특한 향을 갖게 되면서 '세계 스페셜티 커피의 여왕'이란 칭호를 얻게 된다.

게이샤는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1936년 영국 영사 리처드 월리가 에티오피아 종자를 수집해 연구용으로 관리한다. 당시에는 병충해, 특히 커피 녹병에 대한 저항성이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 종자는 훗날 코스타리카의 한 농업 연구기관에 보존된다. 파나마 농가들도 병해 저항성을 기대하며 이 품종을 들여온다. 이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주역이 바로 '에스메랄다' 이다.

◆에스메랄다란
에스메랄다는 파나마 보케테 지역에서 게이샤 종자를 키우는 농장 이름이다. 정식 명칭은 '아시엔다 라 에스메랄다'. 원래 소 목축지였던 농장을 1967년 스웨덴계 미국인 은행가 루돌프 피터슨이 인수 1997년 피터슨 가족이 고지대의 자라미요 농장을 확보한다. 마구잡이로 키우지 않고 고도·품종·가공방식별로 농장을 특화시켜나갔다. 현재 자라미요를 비롯 '카냐스 베르데스', '엘 벨로' 등 3개 구역으로 농장이 분산돼 있다.

파나마 게이샤(세계 최고로 평가받았을 때 품종은 '게이샤 스페셜')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결정적 해는 2004년으로 'BOP'(Best of Panama)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1파운드(453.5g) 당 21달러. 일반 커피보다 무려 40배 비싸게 팔려 난리가 난다. 참고로 지난해 게이샤 스페셜 최고 경매가는 한 로트(20kg)에 60만4천80달러. 이때 한국 로스터기 제조사 '스트롱홀드'가 공식 로스팅머신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그해 두바이의 한 매장에서는 이 커피를 한 잔에 980달러, 당시 환율 기준 약 130만~140만원.

wind30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