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 안전보건센터' 규제도 확인하지 않고 덜컥 267억 건물 매입
수도권정비위원회 및 지방시대위 심의 빠트려 계획 무산
건물 매입·공사·세금·관리비로 313억원, 산재예방 사업비는 '달랑' 38억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삼성 반도체 백혈병 분쟁 해결을 위해 마련된 기금 500억 원을 받고도, 관련 규제를 확인하지 않은 채 건물을 먼저 사들여 '전자산업 안전보건센터'를 8년째 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집행된 기금의 88.9%는 건물 관련 비용에 쓰였고, 산재 예방 사업비는 10.9%에 그쳤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대구 달서구을)이 공단 제출자료와 감사원 감사보고서를 분석해 23일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공단은 2019년 6월 삼성전자로부터 500억 원을 기탁받았다. 2018년 11월 삼성 반도체 백혈병 분쟁 중재판정에서 전자산업 안전보건센터 설치 등에 쓰도록 정한 돈이다.
공단은 2022년 6월 사업계획서 없이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건물을 매입했다. 울산에 있던 미래전문기술원의 청사로 쓴다는 명분이었고, 부대비용을 포함해 267억 원이 들었다.
문제는 매입 전 규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원은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과밀억제권역이어서 연면적 1,000㎡ 이상 공공청사를 두려면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공단은 연면적 6,183㎡ 규모 건물을 사들이면서 이 절차를 확인하지 않았다. 지방 이전 공공기관이 수도권에 조직을 둘 때 필요한 지방시대위원회 심의도 거치지 않았다. 결국 청사 계획은 무산됐고, 감사원은 2023년 9월 공단 이사장에게 주의를 요구했다.
지방시대위원회는 2024년 12월 공단에 "2026년 12월까지 경기광역본부 전자산업 안전보건센터로 활용한 뒤 별도 재단 또는 기부 목적에 부합하는 재단에 무상기부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6개월간 공개 모집에도 건물을 넘겨받겠다는 기관은 나타나지 않았다. 센터 역시 문을 열지 못했고, 현재는 4층 일부만 사무실로 쓰이며 나머지 층은 공사 중이다.
기금 집행 내역도 균형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2026년 9월까지 집행된 기금은 352억 5천606만 원이다. 이 가운데 화학물질 감지 센서 등 산재 예방 사업비는 38억 5천311만 원(10.9%)으로, 그동안 기금에 붙은 이자 38억 6천956만 원에도 못 미쳤다. 반면 건물 매입·공사·세금·관리비로 쓴 돈은 313억 5천469만 원(88.9%)으로, 산재 예방 사업비의 8배 수준이다.
윤 의원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백혈병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마련된 기금으로 규정도 확인하지 않고 건물부터 매입했다"며 "그 결과 센터 하나 열지 못한 채 8년을 허비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건물을 적정하게 활용할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남은 기금도 취지대로 산재 예방에 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