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대구 헌책방골목 형성…1980년부터 책 종류 늘며 소형 서점 위기
매장 13만 권·창고 포함 150만 권…방대한 장서로 전국 손님 찾는 대구 코스모스북
영주 스쿨서점, 학생 수 감소·온라인 구매 확산에 문구류 전면 배치
"언제나 한결같은 곳" 책과 사람 잇는 오래된 서점들
"이 오래된 헌책방엔 어떻게 찾아오시게 된 거예요?"
대구 중구의 오래된 헌책방 '코스모스북'의 배삼용 대표와 인터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배 대표가 서점을 통째로 맡겨두고 창고로 사라졌다. 얼떨결에 일일 점원이 되어 멍하니 서 있던 것도 잠시, 곧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손님과 함께 책을 찾고, 땀 흘리며 계산대 앞에 서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가게를 맡은 1시간 남짓 동안 방문한 12명의 손님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었다. 인천에서 온 김지호(31) 씨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다녔던 헌책방이 좋아 일부러 찾았다"며 "누군가가 그어놓은 밑줄이나 옛 연애편지 같은 흔적은 대형 중고서점에서는 '하자' 취급을 받지만, 헌책방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보물"이라고 웃어 보였다.
또 다른 단골 한만수(66) 씨 역시 "책 향기를 맡으며 서가를 거닐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쇄본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헌책방이 자꾸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전했다.
1990년대 이후 대형 서점과 온라인 구매가 확산되고 재고 부담이 커지면서 헌책방들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서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수십 년을 버텨낸 대구 '코스모스북'과 영주 '스쿨서점'은 모두 지역을 대표하는 백년서점이지만, 생존의 풍경은 확연히 다르다. 두 곳을 찾아 그들이 견뎌온 역사와 생존의 길을 들여다봤다.
◆대구 코스모스북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100평 규모의 매장을 가득 채운 책 더미와 묵직한 헌책 냄새가 반긴다. 매장에만 13만 권, 외곽 창고에 보관한 책까지 합치면 150만 권에 이른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보따리장사로 시작한 코스모스북은 대구를 대표하는 헌책방으로 자리 잡았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방문객이 늘면서 이제는 책을 사고파는 곳을 넘어 대구의 오래된 책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1980년대 후반 출판 시장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책의 종류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서점가에도 다양한 변화가 생겨났다. 배 대표는 "책 종류가 많아지면서 작은 서점들은 재고 부담 때문에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로 들어섰다"며 "남들이 문을 닫을 때 우리는 거꾸로 책의 양을 늘리고 매장과 시설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서점이 보유한 책의 양은 부담인 동시에 경쟁력이 됐다.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해 매장을 찾는 손님에게는 방대한 장서 자체가 선택의 폭이자 방문 이유가 된다. 책을 잘 팔려면 서점 주인부터 책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온라인 서점이 검색과 배송의 편리함을 앞세운다면, 코스모스북은 직접 책더미를 뒤지고 예상하지 못한 책을 발견하는 경험과 사람의 안목으로 차별화를 꾀해온 셈이다.
그렇다고 대규모 장서가 저절로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책을 사들이고 보관하는 비용에 인건비와 포장비, 물류비까지 지속해서 들어간다. 배 대표는 "창고 관리비만 한 달에 1천만원 이상 든다"며 "건물은 자체 소유라 임대료가 나가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아 매장 판매만으로 버티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의 발길도 코스모스북이 얻은 새로운 기회다. 다만 방문객이 많다고 서점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배 대표는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책을 전시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배 대표의 최종 목표는 대구·경북에 1km 길이의 '북로드'를 조성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직접 책을 둘러보고 고르며 지식과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거점을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배 대표는 "AI와 정보화 시대일수록 스스로 보고 선택하는 지식 창조가 중요하다"며 "수많은 이들이 직접 책을 둘러보고 생각하며 스스로 지식을 창조할 수 있는 거점을 남기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고 밝혔다.
◆경북 영주 스쿨서점
영주 스쿨서점에 들어섰을 때 송태근 대표는 문구류를 옮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송 대표는 최근 문구류가 잘 팔린다고 해서 1층 입구 쪽에 '팬시 용품 존'을 새로 만들고, 그 자리에 있던 책들은 2층으로 배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경북 영주 스쿨서점은 지역 주민과 학생의 일상에 밀착한 방식으로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1954년 문을 연 스쿨서점은 송 대표까지 3대째 운영을 이어온 곳으로, 경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꼽힌다. 매장에는 새 책과 학습 참고서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문구류도 함께 판매한다. 오래된 책이 빼곡하게 쌓인 코스모스북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책 방 한켠에는 손님들이 남긴 방명록이 있다. "언제 찾아도 한결같은 곳, 나의 쉼터", "영주에 이런 서점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너무 멋진 공간이 계속 유지되길 바랍니다" 등의 글귀를 찾을 수 있었다.
스쿨서점은 영주 시민의 생활과 오랫동안 맞닿아 있었다. 송 대표는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책을 사던 분들이 커서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며 "지역 주민들에게는 추억이 쌓인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추억만으로 서점을 유지할 수는 없다. 학생 수가 줄면서 학습 참고서 수요가 감소했고, 온라인 구매가 익숙해지면서 서점을 직접 찾는 사람도 줄었다. 송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소비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서점에 와서 책을 골랐던 사람들도 이제는 인터넷으로 주문한다"며 "예전에는 책만 갖다 놓으면 팔리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송 대표가 문구류와 팬시용품을 판매하려는 것도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학생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학습 참고서만으로 매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수요를 확보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이 책도 둘러볼 수 있도록 매장 구성을 바꾸려는 것이다.
책방의 역할을 넓히려는 시도도 이어왔다.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제안하는 '종이약국' 코너를 마련하고, 버스킹 등 문화 프로그램도 시도했다. 독립서점들이 북토크와 공연으로 독자와 만나는 흐름을 기존 서점도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작은 서점이 문화 프로그램까지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책 판매만으로도 빠듯한 상황에서 인력과 비용을 별도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개별 서점의 노력뿐 아니라 유통 구조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봤다. 대형 온라인 서점이 제공하는 할인과 혜택을 소규모 매장이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송 대표는 "서점이 계속 살아남으려면 책을 팔 수 있는 환경부터 갖춰져야 한다. 문화행사를 하고 매장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판매해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스모스북이 오래된 책의 매력을 발견하는 공간이라면, 스쿨서점은 일상에서 필요한 책을 구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 곳은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뜻밖의 보물을 내어주고, 다른 한 곳은 지역 주민이 필요할 때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서점으로 남으려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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