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규 칼럼] 영주 부석사, 일승의 깊은 뜻은

입력 2026-10-23 0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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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

가을의 영주 부석사는 황홀하다. 몇 번을 가도 질리지 않는다. 수많은 문화재, 거기에 담긴 혼이 마음을 이끈다. 부석사는 누가 뭐래도 영남 문화의 한 축이다. "종교는 불국사와 석굴암, 학문은 도산서원, 정신은 옥산서원, 예술·건축은 부석사"라는 말 그 이상이다.

부석사의 통일신라시대 유물로는 무량수전 앞 석등, 석조여래좌상, 삼층석탑, 당간지주, 석조 기단 등이 있다. 고려시대 유물로는 무량수전, 조사당, 소조여래좌상, 조사당 벽화, 고려 각판,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특히 배흘림기둥의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조사당 벽화는 목조 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됐다. 무량수전의 여래 좌상은 국내 최고의 소상(塑像)이다. 그냥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게 아니다.

무엇보다 불교사상의 차원에선 부석사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석사에 있는 고려시대 승려 원융국사 결응(決凝)의 탑비 내용이 부석사의 지향점을 말해준다.

부석사에 이르러 본사(本師)이신 석가모니를 모시니 영취산을 칠보정토로 삼아 항상 안주하였다. …불전 안에는 오직 아미타불상만 봉안하고 보처(補處)는 없었으며, 영탑(影塔)도 세우지 않았다. 제자들이 이유를 물으니 의상대사께서 "스승 지엄께서 이르시기를 '일승(一乘) 아미타불은 열반에 듦이 없이 시방정토로 체(體)를 삼아 생멸상(生滅相)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부석사 원융국사비)

이어 탑비는 "그러므로 보처를 □□, 영탑을 세우지 않았다. 이는 일승의 깊은 뜻이다"라며 지엄이 이를 의상에게, 의상은 법사에 전하여 원융국사까지 전승됐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일승의 깊은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승은 대승불교의 최고 가르침이다. 모든 중생이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화엄경의 일승 사상은 현상계와 본체가 서로 융합하는 약동적인 세계를 말하며 이를 '화엄 일승'이라고 일컫는다. 생사일여(生死一如), '삶과 죽음이 하나'이며 부처와 보살이 따로 없다. '오직 하나'로 귀결된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다.

의상은 670년에 귀국해 관음굴(낙산사 홍련암)에서 백일을 기도하고 676년에 왕의 뜻을 받아 봉황산에 부석사를 창건했다. 화엄교학을 강술해 한국 화엄종의 시조가 됐다. 그의 사상은 '법성게'(法性偈)에 잘 나와 있다. 그중에서도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하나 속에 모두 있고, 여럿 속에 하나 있어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이네"라는 구절에 함축되어 있다.

당시 신라는 삼국통일 직후라 어수선했다. 고구려와 백제의 백성을 하나로 포용·통합하는 게 최대 과제였다. 원효대사가 화쟁과 일심(一心) 사상을 통해 삼한을 '하나'로 묶으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의상도 화엄 사상의 '일념'(一念)을 주창하며 대통합을 추진했다.

원효의 화쟁(和諍)은 '무(無)의 일심지원(一心之原)'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의상의 '원융'은 모든 법의 사리가 구별 없이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원융한 법의 성품, 두 모습이 아니로다)의 상태다. 이는 유교 경전 '서경'의 유정유일(惟精惟一: 오직 정성을 다하고 오직 마음을 통일함)이며, '논어'의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로써 모든 걸 꿰뚫음)다.

부석사의 건축과 문화, 그리고 의상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일승'이라는 사상의 눈을 가지고 바로 봐야 한다. 당시 불교가 호국불교였고, 기저에 '일승'이 굳게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의상이 얼마나 나라를 사랑했는지, 백성을 아꼈는지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일승의 깊은 뜻'은 여기에 있다.

특히 '일승'은 의상에겐 '중도'(中道)였다. 의상은 '법성게'의 결론에서 '누구나 실다운 중도 자리에 앉게 되면 부처가 된다'고 했다. 의상의 '일승 사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영남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 '사상 일통'의 뿌리다. '太白山 浮石寺' 일주문 편액이 가슴을 때린다.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