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이자 미술사학자로서 유홍준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전국 구석구석의 유물을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며 '우리 문화유산 대중화'의 이정표를 세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유산을 다루는 학자로서의 탁월함과 국가의 문화 자산을 관리하는 최고 책임자로서의 엄정함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최근 발생한 검증 부실과 이해충돌 논란, 그리고 이에 따른 유 관장의 사의 표명은 공공기관의 수장이 가져야 할 '공사(公私)의 경계'와 '책임 의식'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다시금 환기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전시품 오기(誤記) 해프닝이 아니다. 5만원에 구입한 개인 소장 유묵을 제대로 된 전문가 감정도 없이 14일 만에 국가 박물관의 특별전에 올린 과정은, 공적 시스템보다 기관장의 개인적 '직관'과 '권위'가 앞섰음을 보여준다. 서예사 전공자라는 자부심이 전문가 집단의 객관적 검증 절차를 뛰어넘는 순간, 친일파의 글씨가 애국지사의 유묵으로 탈바꿈하는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졌다.
더욱 아쉬운 대목은 논란 이후의 대응 방식이다.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정작 해당 유물이 관장 개인의 소장품이라는 사실은 은폐됐다. 자랑처럼 보일까 봐, 혹은 학자로서 부끄러워서 밝히지 못했다는 해명은 대중의 신뢰를 먹고사는 공공기관장의 자세로는 대단히 미흡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을 기회를 스스로 놓치면서, 박물관 연구진이 피땀 흘려 쌓아 올린 신뢰마저 한순간에 흔들리게 만든 것이다.
돌아보면 유 관장의 공직 잔혹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문화재청장 시절 발생했던 저서 공적 구매 논란, 낙산사 동종 명기 논란, 숭례문 화재 당시의 관리 책임 등 공적 업무와 개인적 성과·저술 활동 간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며 숱한 구설에 올랐고, 중도 사퇴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됐다.
학자의 개인적 통찰과 권위가 공적 시스템의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압도할 때, 그 조직은 반드시 윤리적·절차적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 공직에서의 이해충돌 방지와 엄격한 절차 준수는 형식적 행정이 아니라, 조직과 개인 모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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