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 보는 고사성어] 풍전등화(風前燈火), "바람 앞의 등불"

입력 2026-10-23 0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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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영남대 명예교수

일정(一鼎) 이창수 서예가
일정(一鼎) 이창수 서예가
최재목 영남대 명예교수
최재목 영남대 명예교수

'대한민국 현 상황 풍전등화의 위기' '코스닥, 홈플러스… 풍전등화' '이란·이스라엘, 풍전등화 된 휴전' '호르무즈 쳐다보는 풍전등화 물류업계'

국내외 정세는 언제나 바람 앞의 등불이다. 풍전등화(風前燈火)는 "바람 풍, 앞 전, 등잔 등, 불 화"로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매우 위태로운 처지를 이른다. 비슷한 말로는 "바람 앞에 켠 등불"이라는 풍전등촉(風前燈燭)/풍전지등(風前之燈), "바람 속의 등불"이라는 풍중등(風中燈) 등이 있다.

풍전등화는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우리말 속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쓰지 않고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사용한다. 조선시대에는 거의 보이지 않으나 근대기가 되면 국내외의 위급한 정세를 표현할 때 곧잘 활용된다.

바람은 태양열의 온도 변화로 인한 기압 차이가 공기를 이동시키며 생겨난다. 일상에서 늘 경험하는 바람을 인간은 다양한 영역에서 은유와 상징으로 사용하여 언어 습관에 풍부히 담아두었다. 예컨대 "산 위에서 부는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처럼 '좋은 고마운 바람'이나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처럼 '나쁜 매서운 바람'이 그것이다.

나아가 바람은 언어 게임에도 이용된다. 중국의 태호(太湖) 계원(啓園)의 정자 등에 '충이(䖝二)'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풍경, "바람과 달이 끝이 없다"라는 '풍월무변(風月無邊)'을 낭만적으로 해석한 표현이다. 그래서 풍월을 가두는 테두리를 뜯어내는 기발한 생각을 했다. 풍(風) 자에서 외곽 테두리(几)를 벗기면 벌레 충(䖝) 자가 남고, 달 월(月) 자에서 외곽 테두리(冂)를 떼어내면 '둘 이(二)' 자가 남는다. '풍월무변' 네 자가 '충이' 두 글자로 압축된 것이다.

동양권의 문화에서 바람(風)은 좋음과 나쁨이라는 이중성을 갖지만, 기본적으로 "변화와 순환, 하늘의 뜻, 풍요와 시련"을 말한다. 먼저 변화와 순환이다. 봄바람은 만물을 깨우는 생명의 기운을 주고 가을바람은 결실과 이별을 알린다. 다음으로 하늘의 뜻이다. 자연은 그 기운(힘, 소식)을 만물에 보이지 않게 고루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풍요와 시련이다. 부드러운 바람(순풍, 미풍, 훈풍)은 만물을 기르는 풍요와 약동을, 거센 바람(광풍, 돌풍, 폭풍)은 삶의 역경이나 파괴를 은유한다.

사람에 따라 아무리 좋은 바람이라도 나쁜 바람으로 느낄 수도 있고, 아무리 나쁜 바람이라도 좋은 바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폴 발레리)라고 한 시인도 있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말라르메)라고 한 시인도 있다. 이처럼 어떤 바람이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자세와 태도', '관점과 해석'에 따라 사뭇 그 의미가 달라진다.

어느 바람 앞에 서건 겸손하게 끊임없이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행하고 펼쳐나갈 일이다. 아울러 바람을 통해 두루 세상을 살펴보고 자신을 성찰할 일이다. 불어오는 어떤 바람이든 자연의 선물로서, 무언가의 의미를 담은 말씀(명령)으로서, 자신의 깜냥 내에서 잘 해석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그런 지혜가 관건이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