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낙엽길 마찰계수 0.2 빙판 수준…감속 규정은 비·눈뿐

입력 2026-10-14 22:32:58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마른 길 0.7~0.8서 0.2~0.3으로…빙판길과 사실상 같은 값 빗길만 돼도 제동거리 1.8배…ABS는 방향만 잡아줄 뿐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늦가을 도로에 떨어진 낙엽은 비나 새벽 서리에 젖으면 아스팔트에 착 달라붙는다. 그 위를 지나는 타이어는 노면이 아니라 낙엽을 밟는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이 측정한 젖은 낙엽 노면의 마찰계수는 0.2~0.3이다. 겨울 빙판길이 0.2 이하이니 사실상 같은 값이다.

◆ 마른 길의 3분의 1

마른 아스팔트의 마찰계수는 0.7~0.8이다. 비에 젖으면 0.5~0.7로 조금 내려간다. 여기에 낙엽이 깔리면 마른 길의 셋 중 하나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도 지난해 분석에서 도로교통공단과 같은 수치를 내놨다.

낙엽이 미끄러운 이유는 물을 빼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이어 표면의 홈은 빗물을 옆으로 밀어내 고무가 노면에 닿게 해 준다. 젖은 낙엽은 이 홈을 메운다. 도로교통공단은 낙엽이 아스팔트에 밀착해 수막 배출을 막으면 제동이 아예 안 되는 상황까지 생긴다고 설명한다.

◆ 시속 50km, 9.9m가 18.1m로

낙엽이 없는 빗길만 돼도 차는 생각보다 멀리 간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해 실험한 결과 시속 50km로 달리던 승용차는 마른 노면에서 9.9m 만에 섰지만 젖은 노면에서는 18.1m를 더 갔다. 1.8배다. 화물차와 버스도 비슷한 폭으로 늘었다.

빙판길은 차원이 다르다. 공단 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가 2021년 잰 값으로 같은 속도의 승용차가 빙판에서 멈추는 데 46.2m가 걸렸다. 마른 노면의 네 배를 훌쩍 넘는다. 시속 100km면 172.5m까지 늘어난다. 노면 마찰계수가 빙판 수준에 가깝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젖은 낙엽 제동거리 역시 단순 빗길보다 빙판길 수치에 육박할 수밖에 없다.

사고가 나면 피해도 커진다. 2022~2024년 노면이 젖어 있을 때 난 교통사고의 치사율은 100건당 1.90명이었다. 마른 노면의 1.5배다.

◆ ABS는 방향만 잡아 준다

운전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는 ABS가 차를 빨리 세워 준다는 믿음이다. 한국도로교통공단 연구진은 ABS가 바퀴 잠김을 풀어 조향력을 유지해 주는 장치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미끄러운 저마찰 노면에서 제동거리 자체를 단축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도 타이어 홈이 낙엽과 물로 메워지면 ABS가 있어도 물리적 마찰 한계 때문에 제동거리가 크게 늘어난다고 짚었다.

더 위험한 건 ABS가 작동하는 순간이다. 젖은 낙엽 위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페달이 발바닥을 치듯 강하게 떨리고 소음이 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운전자가 이를 고장으로 오인해 페달을 떼면 제동력을 완전히 잃고 그대로 추돌한다고 경고한다. 떨려도 끝까지 밟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타이어 상태도 변수다. 공단 실험에서 마모 한계선에 닿은 타이어는 시속 100km에서 새 타이어보다 제동거리가 최대 1.5배 길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사고 사례를 보면 낙엽 깔린 커브길에서 급제동 중 차체가 돌아 방호벽을 들이받는 사고가 잦았다. 낙엽과 노면 페인트 구간에서 미끄러져 이륜차나 자전거가 전도되는 일도 반복됐다.

◆ 법은 비 20%, 눈 50%…낙엽은 없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비로 노면이 젖으면 최고속도의 20%를, 노면이 얼거나 눈이 20mm 이상 쌓이면 50%를 줄이라고 정해 놨다. 젖은 낙엽은 어느 항목에도 없다. 한 교통안전 전문가는 감속 기준이 우천과 결빙에만 묶여 있어 낙엽 노면은 단속도 계도도 근거가 약한 사각지대라고 지적한다.

경찰청은 8일부터 11월 말까지 가을 행락철 교통안전 대책을 가동했다. 최근 5년간 10~11월 고속도로 사망사고가 평상시의 129.3%로 치솟았고, 버스 사고 사망자는 155.2%까지 뛴 데 따른 것이다.

◆ 청주 사직대로, 인제터널

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사직대로에서는 젖은 가로수 낙엽이 노면에 밀착됐다. 이 구간에서 급제동한 차량들이 잇따라 미끄러지며 추돌 위기를 겪었다. 흥덕구청은 긴급 수거에 나섰다. 강원 인제터널과 인제대교 부근에서는 젖은 노면에 이물질 유막이 끼면서 달리던 차 8대가 줄줄이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6명이 다쳤다.

지역마다 위험의 모양이 다르다. 수도권 도심은 플라타너스 등 넓은 잎 가로수가 많아 비 온 뒤 노면 흡착이 심하다. 반면 강원과 경북 산간 도로는 음지 곡선 구간에서 낙엽과 서리가 엉켜 국소 결빙으로 이어진다.

전국 지자체는 20일부터 낙엽 수거와 배수구 정비 특별대책기간에 들어가고, 다음 달 1일에는 노면 미끄럼 취약구간 합동 점검이 시작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한 전문가는 "비가 올 때는 수막현상으로 타이어가 도로에 제대로 접지하지 못해 제동거리가 크게 늘어나 사고 피해가 커진다"고 설명했다.